[넷플릭스X 브런치] 1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리뷰
블랙미러 시즌 1의 1화의 충격을 기억한다. 납치된 공주를 풀어주는 유일한 조건은, 총리가 돼지와 성관계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것뿐이라는 충격적인 설정. 신선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던 설정과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지나치게 다크했던 엔딩. 왜 사람들이 '블랙미러', '블랙미러'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라 생각했다. 아, 이 드라마는 끊어서 보는 게 아니라 한 편을 집중해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겠구나. 다 보고 난 이후에도 그 여운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하겠구나. 그리고 이 드라마의 어두움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멘탈이 뒷받침되는 날에만 볼 수 있겠구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날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넷플릭스에서는 시선을 사로잡는 새로운 콘텐츠들이 너무나 빨리 업데이트되었다. 그런 이유로, 블랙미러는 보고 싶었지만 자꾸만 미루게 되는 시리즈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20분 내외의 시트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블랙미러는 딱 그 정반대에 있는 콘텐츠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재미없다고, 실망스럽다고, 블랙미러답지 않다고 - 왓챠 평균 별점이 2.1점밖에 되지 않는 블랙미러 시즌 5를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거다! 이 정도의 드라마를 보고 실망스럽다, 블랙미러답지 않다, 별점 2.1이 나오면 도대체 블랙미러 이전 시즌은 어땠다는 말인가. 얼마나 놀라운 상상력으로, 얼마나 대단한 콘텐츠를 뽑아냈길래, 이 정도의 드라마를 보고도 그런 평이 나오는 걸까. 이번 시즌이 기대를 못 충족시켰을 수도 있겠지만, 블랙미러를 시즌 4까지 보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올라간 게 아닐까 싶었다. 콘텐츠 보는 눈이 높아져서, 더 깐깐하게 고르게 되는 게 아닐까. (물론 벤더스내치를 보긴 했지만, 블랙미러 시즌 1의 1화만 본) 블알못이 보기에는 시즌 5도 나쁘지 않았다. 도대체 이전 시즌들은 어땠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시즌1부터 정주행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시즌5는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드라마 정주행은 도장 깨기처럼 한 시즌 한 시즌 박살내는 재미가 있는데, 3편이라니 - 생각보다 할 만하다. 그렇다면 다 같이 블랙미러 시즌5를 박살내러 가 볼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바람의 기준은 어디까지?
어떻게 보면 막장 중에도 이런 막장이 없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아이도 있는데, 오래된 친구에게 끌린다. 아내에게는 스킨십을 일절 안 하면서, 친구에게는 (쪽)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한다. 누가 봐도 이건 바람인데? 그러니까 여사친을 조심해야지 - 이런 뻔한 결론에 도달하고 싶겠지만, 블랙미러가 그렇게 뻔한 길을 택할 리 없다. 그 친구는 여사친이 아닌 남사친이며 - 아, 그러면 '숨겨 왔던 나의 ~' 이런 느낌인 건가 - 하면 그것도 아니고, 둘의 육체적 관계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주인공인 대니와 칼은 VR 게임에서 데이팅하는 사이다. 원래는 싸움, 대전이 목적인 게임이지만 어느 순간, 둘에게 있어 그 게임의 목적은 더 이상 승부 겨루기가 아니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대니와 칼은 둘 다 남성이며 서로에게 끌리지 않지만, 게임 속에서는 여성과 남성 캐릭터로 만나 서로에게 더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VR 게임을 통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현실 세계에서의 자극은 시시하게만 느껴진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억지로 VR 게임의 유혹을 밀어내려 애쓰지만, 그 유혹을 참는 게 쉽지 않다. 흔히 봤던 막장 드라마의 서사와 비슷한 것 같다가도, 과연 이것을 바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드는 드라마다.
게임 속 캐릭터와의 관계를 즐기는 것이지, 그 캐릭터를 조종하는 현실 속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 관계를 즐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게임 속 캐릭터가 게임 세계에서 즐긴 것이지, 현실 세계의 인물이 현실 세계에서 즐긴 건 아니다. VR처럼 생생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면, 게임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도 현실 세계에서 벌어진 일처럼 생각하고 무게를 둬야 하는 것일까? 만약 현실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더라면, (결국 엔딩에서 그랬듯이 서로의 타협점을 찾았더라면) 게임 속 관계를 계속 지속해 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게임이야 원래 목적은 그게 아닌데 변질되었다지만, 본래의 목적을 '관계와 사랑'에 두고 있는 VR 게임이 출시된다면, 연인이 있는 사람들은 그 게임을 즐기면 안 되는 걸까? 그 게임을 즐기면 배신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이런 게임이 보편화된다면, '이런 새로운 자극을 즐기는 순간이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보편화된다면,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 그랬듯 서로의 합의 간에 새로운 자극을 즐기는 것이 당연해지는 날이 올까. 그런 관계가 오히려 건강하다고 보는 날이 올까.
이런 날이 올 것 같긴 한데,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그랬듯, '이런 미래가 오기는 올까 + 이런 미래라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런 날이 올 것 같긴 한데,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콤보로 안겨 주는 블랙미러였다. 인터넷 중독 검사 같은 것을 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목이 있지 않나. '인터넷 친구가 현실 세계의 친구보다 더 좋다/ 가깝게 느껴진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혹은 인터넷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이런 질문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맺는 관계가 깊어 봐야 얼마나 깊겠어, 얼마나 교류를 할 수 있겠어. 당연히 오프라인에서 맺는 관계가 낫지.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터무니없는 질문이 아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아도 친밀감을 형성한 관계들이 늘어나고, 그런 관계가 오프라인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관계가 확장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것처럼, 어쩌면 VR 기기 등을 통해 맺는 관계가 당연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에는 'VR 기기를 통해 만난 친구가 현실 세계의 친구보다 더 좋다/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항목에 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오프라인에서 맺는 관계만큼 혹은 그 관계 이상으로, 가상 현실에서 맺는 관계가 더 생생하고 짜릿하게 느껴지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현실보다 더 현실 같게, 있는 그대로의 자극을 느낄 수 있게끔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런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기대되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게 만드는 블랙미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저런 게임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 저런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블랙미러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