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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hpress Feb 18. 2023

일과 꿈의 날카로운 경계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 한 번도 다른데 눈 돌리지 않고 그림만 향해 직진해 왔다. 미대와 디자인 회사를 거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들어간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광화문 교보문고 한복판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눈물방울을 떨굴 새도 없이 책에서 내 이름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편집자의 실수라며 사과도 받고 다음 일도 바로 의뢰받았지만, 출판사는 차일피일 그림값 지급을 미루며 돈을 주지 않았다. 첫 경험으로 알았다. 이쪽 바닥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은 곳이구나.


출산했다고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스스로를 성장시키겠다며 백일 된 아이를 업고 일러스트 대안학교에 다녔다. 생후 6개월이 된 아기는 이가 나는 자리가 간지러운지 의자에 앉은 내 허벅지를 자꾸 물어뜯었다. 피가 나는 쪽이 내 몸인 것을 확인하고는 시선을 옮겨 한 장에 5만 원짜리 그림에 다시 붓질을 했다. 독하게 살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 아이는 성장해 가는데,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 걸까. 불안했다.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소리에 아파트 복도가 시끄럽다. 잔인하게 간질거리는 봄 햇살을 등지고 16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최종’, ’ 이것이 최종’, ’ 진짜 최종’, ’최최최종’, ’이게 진짜 최종’, ‘최최최최최종’ 이런 이름의 파일들이 폴더를 가득 채워가고 있다.

“작가님, 원숭이의 다섯 번째 손가락이 네 번째 손가락을 가렸어요. 그 바람에 도시락의 김밥이랑 구별되지가 않네요.” 같은 그림을 열다섯 번째 수정하고 있다. 언제 내 책 한번 내보나 한탄하며 학습지에 들어갈 그림에 꾸역꾸역 색깔 채우는 일로 돈을 벌고 있다. 일과 꿈의 경계가 점점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10여 년간 같은 일을 하며 일의 한가운데 들어와 보니 이 일이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작가님 이거 지금 당장 안 고쳐주시면 저 잘려요. 아침까지 디자인 끝내서 인쇄 들어가야 해요. 제발 부탁드려요.” 새벽 두 시에 이런 급박한 수정 요청 전화를 받으면 상대가 아무리 공손하게 울고 있어도 짜증이 난다. 내면의 욕이 늘고 말씨가 험해졌다. 3개월 계약직인 편집자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나는 또 밤을 새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밝힌다는 뜻의 ‘일루미네이트’와 어원을 같이 하는데, 그림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식의 하청의 하청업자들끼리 싸우는 구조 안에서는 세상을 밝히는 그림이 나올 수가 없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일을 때려치우고 꿈을 향해 가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새벽까지 적성에 맞지 않는 그림 일로 돈을 벌고 틈틈이 나의 꿈인 창작 그림책을 내기 위해 공모전을 준비한다.

“00아, 엄마... 또 떨어졌어...” 열두 살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가릴 틈도 없이 눈물이 벌컥 뿜어져 나온다. 이번이 열 번째 공모전 탈락이다. 자식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나한테만 이래? 어흑흑흑...”초점 없는 눈으로 한참을 중얼거리는데, 딸이 내 등을 토닥이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엄마 술 마셨어?” 차라리 술주정이면  좋겠다.

눈물을 닦으며 여러 그림책 출판사에 투고해 본다.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 콘셉트가 맞지 않아 반려합니다.’ 이렇게 답신을 해주는 곳은 차라리 감사하다. 그 많은 출판사 중 단 한 군데도 내 그림책을 출간하겠다는 곳은 없다. 존재를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학습지 회사들은 10여 년째 ‘작가님’, ‘선생님’ 깍듯한 높임말로 그림값을 후려쳐 깎아내린다. 내 꿈은 학습지 속에서 앞치마 입고 줄넘기하는 하마 발톱에 색칠하는 게 아니라고! 를 외치며 적금을 깼다.


2017년 4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그림책 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적금 깬 돈으로 제작한 샘플 북을 들고, 급하게 공부한 영어를 이마에 묻힌 채 비행기에 올랐다. 300여 통의 이메일을 보내 겨우 잡은 다섯 개의 미팅을 마쳤지만 유럽 출판사들은 한국의 신인 작가를 정중하게 외면했다.

유럽까지 가 결국 국내 출판사 편집자에게 최후의 통첩을 받았다. “이런 책은 안 팔리는 거 아시잖아요.” 거절의 입 모양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다 끝났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된다는 건 그냥 아닌 거다. 마조레 광장에서 젤라또 한 입을 핥았을 때 떫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이 내가 짓는 마지막 미소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국에 돌아왔다. 몇 달 동안 엎어져서 울었다. 세상을 밝히겠다며 그림을 그려놓고 정작 나 자신은 조도가 측정되지 않을 만큼 깊은 어둠에 빠졌다. 고민했다.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장사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가족의 전화에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며 도서관을 헤매는 내 손에는 또 그림책이 들려있다.

안갯속에서 아무리 팔을 뻗어도 잡을 수 없고 비틀거리며 허우적댈수록 꿈은 저 멀리 뚜렷해져 갔다. 꿈이 이렇게 가혹한 것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꾸지 않았을 것이다. 원인 없이 무병을 앓는 것처럼 오래 아팠다. 그동안 그려놓고 출간되지 못한 내 그림책들을 붙들고 울었다 웃었다를 반복하면서 나는 가만히 미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래전 닥치는 대로 응모했던 공모전 중 한 군데에 당선이 되었다는 전화다. 어버버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끊은 그 한 통의 전화를 타고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간절하게 자신을 믿은 덕분인지 온전히 내 목소리를 담은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꿈이 밥을 먹여 주지는 않는다. 지긋지긋하게만 생각했던 학습지 그림 그리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이었는지 절실하게 와닿는다. 밥벌이가 가르쳐 주었던 낮은 마음을 복기해 본다.

일과 꿈의 날카로운 경계 위에서 꿈 쪽으로 뛰어내린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난한데 행복하고 지쳤지만 힘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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