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조금 일찍 마무리하며
벌써 올 해가 백일도 채 남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영영 그곳에 멈출 것 같았던 일상도 어느새 회복되었다. 나는 연말이 되면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도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이를 구실 삼아 얼굴을 보고 술잔을 부딪치고 하는 일련의 행동을 좋아한다. 연초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며 그 해의 목표나 다짐을 정리하며 새해를 떠들썩하게 즐긴다. 그런데 이제껏 한 해의 중간을 기념하거나 새해에 세운 목표를 점검해 본 적이 없어 올해부터는 한 해 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에 해보려고 했는데, 그 무렵에도 역시 잘 놀다 까먹었기 때문에 오늘에서야 글로 남겨둔다.
사실 지난 서른 해 동안 나 자신에게는 상당히 엄격한 편이라서, 내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잘했다거나 만족스럽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는 -분명히 바보 같은 선택과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참 잘 견뎌냈다고, 그래서 지난 몇 해에 걸쳐 보낸 시간보다 더 깨달은 것들이 많은 반년이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이제야 밝히는 올해의 나의 목표는 홀로서기였다. 홀로 선다는 것은 꼭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감정이나 수면과 같이 분명히 스스로 통제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들을 자각하고 마음가짐을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감정과 수면의 질은 서로 맞닿아 있어서,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을 더 자지 못했고 그런 불안감에 잠드는 날이면 깨어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
그래서 올해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계속 노력했던 것 같다. ‘잠을 좀 못 자면 어때, 하루를 더 길게 살면 되지’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좀 실망하면 어때, 나만 아니면 되지’ 하는 등의 노력. 별거 아닌 것 같은 노력들이 쌓이면, 쌓인 눈에도 처마가 무너지듯 오랜 불안도 잘 이겨낼 수 있더라. 물론 이렇게까지 되기 위해 주변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갈피 속에 숨겨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어 보답하고자 한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변화의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작년 가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연인으로 함께 했으며,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모든 일에는 걸림돌이 있었고, 계절이 다시 한 바퀴를 돌아온 지금 많은 부분이 정리되었다. 커다란 수레바퀴들이 돌아가는 동안 나의 인생에 아주 작은 부분들도 많이 달라졌다. 새롭게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며, 몇 년이나 미뤄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바쁘게 사는 것은 어쩌면 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부 소홀해졌으며, 자신을 돌보지 못해 건강도 많이 상하게 되었다.
작년에 만난 새로운 인연과는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인생은 외로움과 고독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나에게 언제나 내 편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그렇지만 겨우 홀로 선 내가 그 아무리 사랑하는 혹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것도 아직은 설렘보단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나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곧게 세우고, 강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으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직 올 해가 백일 정도 남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한 해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정비하며 이 시간 동안 나에게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이미 그 일환으로 이 블루노트를 시작하였고, 어느새 <나의 블루노트>의 연재가 마무리되고 있다. 나는 늘 방황이 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많이 흔들렸지만 그만큼 단단해졌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아마 더욱 바빠질 것이다. 이런저런 일을 벌이느라 조금 느슨하게 풀어뒀던 나사를 다시 단단히 조이고, 운동화 끈 꽉 묶고, 다시 한번 나를 위해 달려볼 작정이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이런 나라도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