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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름 Sep 12. 2024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느껴질 때

쉬는 법을 모르는 당신에게

어느새 욜로(YOLO) 열풍은 지나고 전 국민 갓생 살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것 같다. 낮에는 열심히 돈을 벌고, 저녁이 되면 헬스장을 다니거나 러닝 크루를 가입해 뛰는 2030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매일 같이 수많은 #오운완 #오런완 해시태그가 쌓이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외국어 학습지를 시작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바쁜 출퇴근 길에 짬을 내 영어 공부를 한다. SNS 쏟아지는 갓생 인증글들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오늘도 나만 놀았구나" 싶은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나는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다. 게임 회사 개발팀이라 함은 각종 지역의 등대로 자리매김해 높은 업무 강도와 늦은 퇴근 시간으로 예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작업 기한을 정해두고 연장 근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크런치 기간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반년 이상 지속되면서 육체적, 심리적 피로감이 말할 수 없이 축적되었고, 원래도 앓고 있던 강박장애의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환경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스트레스는 곧 강박의 강화를 불러온다.


보통은 퇴근을 하면 할 수 있는 활동이 '침대에 누워있기' 밖에 없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친구들의 일상이 담긴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숏폼 비디오를 하릴없이 보게 된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들 시간이 오면, 어떤 날은 퇴근 후 '숨 쉬기' 밖에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나와는 달리 운동도 하고 혹은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있는 사진만 봐도 스스로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곗거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밤 10시에 퇴근을 하면 24시간 운영하는 헬스장을 가면 되는 것이고, 출근 전 한두 시간 일찍 일어나면 수영도 다닐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는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곤 한다.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쁘게 살기'이다. 이미 화장실도 갈 수 없이 바쁘다면서, 어떻게 더 바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온라인 셀프 스터디와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어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어학원에 등록하니 퇴근 후 억지로라도 숙제를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고, 어떤 날은 좀 무리를 해서라도 일찍 퇴근을 해서 저녁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다. 


몸은 더욱 고되었지만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야 좀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 생각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게임을 하거나 숏츠 같은 걸 보는 나와는 다른,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평소 틈만 나면 하게 되던 불안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도 많이 줄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후 정신과에 내담 하여 상담하는 동안 이러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 또한 강박적인 행동입니다."




나와 같은 강박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생각이 많다. 걱정이 많아서 걱정이 해결되면 걱정이 없겠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불안감과 걱정거리는 당장 해결할 수도 없으며, 그 원인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강박적인 생각들-나만 뒤처지고 있다거나 한심하게 살고 있다거나-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근 10년 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쉬어본 것은 3개월이 전부이다. 그 3개월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장대한 계획-2번의 해외여행과, 3가지 운동 계획과, 두 번째 바디프로필 준비 등-을 세웠으나, 다리 부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무산되었을 때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리가 석고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오히려 나는 나를 달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집에서 쉬는 동안 처음 블루노트라는 이 작은 글들의 묶음을 떠올렸고, 해마다 겨울이면 앓고 있던 계절적 우울증이 많이 호전되었고, 새로운 직장 생활에 투입할 에너지도 축적할 수 있었다. 사실은 '한심하지 않게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정신을 오히려 망가뜨리고 있었고, 그 역시 망가진 정신의 산유물이었으며,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만의 시간을 느긋하게 갖는 것이 강박 장애를 치료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강박이란 것은 기질과도 같아서 이러한 삶을 30년 넘게 살아온 내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고치기엔 너무나도 단단하였나 보다. 


그래서 이번 글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쉴 때는 잘 쉬자.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신생아가 된 것처럼 내가 먹는 것, 내가 자는 것, 내가 즐거운 것들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것을. 




김창완님의 엽서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밤은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두고 스스로와의 시간을 보내보길 바란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라는 김창완님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며칠 푹 쉰다고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운 우리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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