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관계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당신을 위한 연애 지침
우리가 아주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세상에 태어난 직후부터 양육자와 애착을 형성하고 이를 강화하면서 개인의 애착 유형이 결정된다. 이는 훗날 타인과의 정서적 관계를 맺을 때 발현되는 성인의 애착 유형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주로 낭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인의 애착 유형은 불안형, 회피형, 안정형, 혼란형 등 4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도 자석의 N극과 S극과도 같은 불안형과 회피형은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모습에서 자신의 견해를 더욱 공고히 하며 빠르게 가까워지기도 하지만, 위기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정반대의 해결 방법으로 갈등하다 이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불안형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간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또 이별도 경험해 보았는데, 물론 관계가 흔들리고 결국 깨어진 원인이 나 자신이었던 경험도 있다. 나는 오랜 시간 강박 장애를 앓고 있고, 이것이 내가 불안형 애착 유형을 갖고 있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둘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불안형 애착유형의 연애]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비판적인 경향이 강하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자신의 연인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인으로부터 꾸준한 관심과 애정을 받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노력한다
[강박장애의 연애]
자신의 연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연인에게 기꺼이 헌신하고,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다
자신의 연인이 다른 대인 관계를 맺을 때 강한 질투를 느끼거나 강한 불안을 느낀다
관계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 현실이 아님을 확인할 때까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례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열정이 넘치던 20대 때의 일이다. 나는 항상 분에 넘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멋진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었다. 큰 기업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그를 선망하는 부하 직원이 여럿일 거라 상상했다. (지금은 당시의 내가 이른바 오징어지킴이 선봉주자였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에 관한 비판은 달게 받도록 하겠다.) 그에 반해 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못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세미녀도 아니었고, 밥은 먹고살 만큼 벌지만 그에 비하면 적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나는 몹시도 불안해했다.
그와 만날 때 나는 나의 인간관계보다 그의 대인 관계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남자친구의 SNS 계정에 들어가 새로운 팔로워가 있는지 확인했고, 예쁜 여자가 팔로잉 목록에 있으면 '좋아요'를 누르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불안이 심한 어떤 날은 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연애 초반에는 순순히 휴대폰을 내어주던 그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면 정말 회사가 맞는지 의심하는 수준까지 이르렀고, 나의 지나친 애정과 관심을 이겨내지 못한 그는 나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사람들은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안정적인 연애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강박장애로 약물 치료를 하고 있는 내가 어떻게 1년이 넘게 별 다른 문제없는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그 방법들을 아래에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당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불안형 애착 유형을 가진 사람들은 회피형 사람들에게 끌리게 된다. 앞에 이야기 한 남자친구 역시 회피형이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계기로 싸움이 시작되면, 불안형인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싸움을 종결하고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반대로 회피형인 그 사람은 화가 나는 그 상황 자체를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최초의 원인은 어느새 잊히고 그 순간의 대화로 인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어느새 싸움은 '너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고, 상처를 받은 불안형과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피형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불안할 때 당신의 감정을 들어줄 수 있고,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물론 당신이 느끼는 모든 사소한 불안감을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당신이 용기 내어 꺼낸 진심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둘째, 당신이 불안할 때는 화를 내지 않고 불안을 표현해야 한다.
불안형 애착 유형이 화를 내는 원인 중 하나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왜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연락을 안 해?"라는 말은 '네가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불안했어'라는 마음이 화로 표현되는 것이며, "왜 요즘에는 예전처럼 표현하지 않아?"라는 말은 '요즘 네가 나를 예전보다 덜 사랑하는 것 같아 불안했어'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당신이 불안할 때 화를 내면, 상대방은 당신의 불안함을 알아주기 이전에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이를 방어하거나 반박하는 과정에서 결국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당신이 불안할 때는 불안하다고 고백해야 한다. "나는 네가 나를 여전히 사랑하는지 불안해하고 있어. 예전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 더 표현해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직접적인 마음을 전해야 한다. 당신의 감정을 고백하는 것은 연인 사이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분노라는 포장지에 그 마음을 담을 필요는 없다.
셋째, 벌어나지 않은 일에는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연인이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의심이 들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나의 경우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것이 거짓인지 확인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100%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어쩌다 확인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것이 진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는 자신에게는 더욱 매력이 떨어진다고 느껴져 자존감만 낮아질 뿐이다.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불안감이 들 때, 이를 해소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이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마음을 써야 한다. 당신의 연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눈앞에 두 사람이 목격이 되는 순간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좋다. 현장을 목격했다면 그것은 조상신이 도운 것이니 즉시 헤어지면 될 일이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화려한 연애 경험을 가진 것도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위와 같은 방법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에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 과거에 불안형 애착 유형을 가진 강박 장애 환자로서 안정적인 연애를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연인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휘청거리는 관계 앞에 불안해하던 내가 아니라, 스스로도 올곧게 설 수 있고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을 건강한 방법으로 해소해 나가는 것이 결국엔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의 불안이 관계를 위협하는가? 그럴 땐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더욱 더 큰 애정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아라. 정말 원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정말로 완벽한 그라면 그다지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편해야 당신의 사랑도 편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