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시간 Nov 09. 2022

감각 기억

시각과 감각

저녁 무렵 주차장에서 눈이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 서로 피하지 않고 한참을 마주 보았다. 문득 어린 시절 기르던 고양이, 나비의 감촉과 온기가 느껴진다.

어떻게 시각이 기억 회로를 따라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강아지, 고양이, 토끼까지, 많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 우리 집 정원을 스쳐갔다. 분명 일정기간 살았었음에도, 마음과 기억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음에도, 마치 스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나에게는 너무 어린 시절 기억이라 명확하지는 않지만 첫 강아지는 카피라고 부르던 아이였다. 작은언니는 카피가 몸집이 크고 짖는 소리도 커서 무서웠다고, 그래서 학교 갔다 집에 돌아올 때는 미리 준비한 과자를 놓아주고 뛰어들어갔었다고 한다. 나의 강아지에 대한 첫 기억은 '티티'다. 연한 황톳빛 강아지. 티티, 그 아이가 어느 날 새끼 네 마리를 낳았다. 너무 신기해서 바로 위 오빠와 나는 틈만 나면 강아지 집에 들어가 앉아 혹시나 젖을 먹지 못하는 아이를 엄마 배 위에 얹어 주어 젖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지을지, 머리를 마주하고 의논에 의논을 거듭해서, 당시 유행했던 만화 주인공 이름을 따라 콩순이 콩식이 콩돌이 콩민이로 지었다. 마지막 콩민이는 내 이름의 '민'자를 넣었다. 나는 왜 콩민이가 별로 예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마당 한편에 커다란 강아지 집에 티티가 누워있고 강아지 네 마리가 젖을 먹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일종의 섬광 기억인 것일까. 강아지를 살짝 들어 올리던 손 끝의 감촉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낯선, 아주 작은 생명체를 들어 올렸던 첫 감촉에 대한 기억... 첫째 콩순이는 통통하고 힘이 좋았다. 왠지 강아지도 표정이 있다면 매일 웃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둘째는 콩돌이였는데 별 기억이 없다. 유난히 눈이 동그랬던 것 같은 기억... 셋째, 콩식이는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강아지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다면 콩식이가 가장 높지 않았을까... 왠지 콩식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런 콩식이가 어느 추운 날 입에서 거품을 쏟아냈다. 아버지에게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되는 지를 물었지만 절대로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해 겨울 콩식이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콩민이는 다른 강아지에 비해 왜소했다. 왜 내 이름 끝자리로 불린 콩민이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을까. 강아지 네 마리와 티티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헤어졌다. 한 명 한 명에 대한 헤어짐의 기억에 마음 한편이 아픈 듯 느껴진다. 강아지 네 마리에 대한 기억을 뒤로하며 언제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시작에 대한 기억은 없는 고양이 '나비',,, 그 아이는 아버지의 규율(애완동물이 집안에 들어올 없다는)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다른 고양이처럼 집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겨울에는 지하 연탄 보일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른 아침 등굣길에 '나비야'하고 부르면 지하실에서 나와 살며시 품에 안겼다. 그 아이를 안고 학교에 도착해서 내려놓으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의 등굣길에 벗이 되어주었던 '나비'. 추운 겨울에는 회색 고양이로 지내다가, 따뜻한 봄이 오면 하얀 바탕에 회색점이 박힌 뽀얀 모습으로 돌아와 우리의 놀이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식사 중에 벨이 울려 나가 보았더니 사늘하게 굳어 이웃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 집 정원에 놓아둔 쥐약을 먹었던 것이다. 아파트 지하에서 마주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의 유년기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환된 나비의 따뜻한 품에 대한 기억이 오늘의 발걸음을 조금 가볍게, 또는 무겁게 한다. 내 눈앞에 이 아이는 나비에게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잠시 나와 눈 맞춤한 것일까. 주차장 한 구석진 곳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와 눈 맞춤에서 시작된 짧은 회상이 따뜻한 온기가 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삶의 여정에 문득 스치는 섬광 기억은 무력한 현실에 숨 쉴 공간을 내어준다.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위로 한마디 하기 위해 우리 나비가 잠시 내 눈에 소환된 것일까. 우리 나비 추운데 고생 많았고, 따뜻했던 너의 품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많이 고마웠어. '나비, 잘 가...'

작가의 이전글 <플라톤의 향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