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그런 이들이 있다. 타인들의 현실에, 그들이 말하고 다리를 꼬고 담뱃불을 붙이는 방식에 사로잡혀버리는, 그들은 덫에 걸리듯 타인들의 존재에 붙들린다. 어느 날, 아니 그보다는 어느 밤, 그들은 오직 단 한 명의 타자가 지닌 욕망과 의지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자신이라 믿어왔던 것들은 자취를 감춘다. 그들은 사라지고, 자신의 상이 움직이고 복종하며 상황을 알 수 없는 흐름 속으로 휩쓸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은 언제나 타자의 의지에 뒤처져 있다. 타자의 의지는 언제나 한 발 앞서 있다. 그들은 결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아니 뒤센느를 1958년 8월 14일 그곳으로 들여보내려 하는 순간, 나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든다. 이건 대개의 경우 내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 글쓰기를 포기하려 할 때 찾아오는 전조다. 기억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기억 속 이미지들-방, 원피스, 에마이 디아망 치약 등등(기억은 미치광이 소품 담당자나 다름없다)- 이 서로 이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나를 의미 없는 영화에 넋을 잃은 관객으로 만들지 않도록 저항해야만 한다. 내게 직면한 문제는 차라리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여자아이, 아니 D의 행동과 행복, 고통을 반세기 전 사회의 규칙에 따라, 그녀도 캠프의 다른 누구도 속하지 않았던 더 '진보된 ' 사회의 소수를 제외한 당시 모든 사람에게 명백했던 정상성에 따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
"사실 내가 원했던 한 가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이고 감지되는 증거를 갖는 것. 마치 내가 계속 쓰기 위해 그들이 살아있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허구의 존재라는 비물질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평온 속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주는 위험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 쓸 필요가 있는 것처럼. 글쓰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시도로 만들 필요. 글쓰기가 지닌 권능을 - 수월함은 아니다. 아무도 나만큼 쓰는 걸 힘들어하진 않는다-글쓰기가 가져올 결과를 상상하며 느끼는 공포로 속죄할 필요."
"글을 써나갈수록, 내 기억 속 이야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단순함이 사라진다. 1958년의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은 수년에 걸쳐 내가 축적해 온 여러 해석들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윤색하지 말기. 나는 허구의 인물을 축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였던 그 여자아이를 해체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느끼던 행복이 진짜라는 걸 알고, 그녀가 그 행복을 진짜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행복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는 빨간 수첩에 베껴 적은 문구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경험하는 동안 즐기고 있단 걸 알아차릴 수 있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다.(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자주, 나는 내 책을 끝마치고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 집히기도 했다. 그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출간에 대한 두려움인지, 완성했다는 만족감인지. 책을 다 쓰고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의 자기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상상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배운 것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는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사진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내가 원했던 건 1959년의 그 여자아이가 다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고 있는 현재-내가 창문 앞의 책상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가 아닌, 다른 현재가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각을 포착하는 게 아닐까? 연약하고 어쩌면 무용한 정복이지만, 사유의 힘과 우리 삶의 통제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前) 현재가 불러일으키는 감각"
"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사사가 추구하는, 지배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는 언제나 이런 점들이 빠져있다. 경험하는 순간 경험한 것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 모든 문장, 모든 단언에 구멍을 뚫어야만 하는 현재의 불투명함."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우드사이드파크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이 이미지로부터 내가 자석에 이끌리듯 끌려왔던 것은 아닌가 자문하고 있다. 캠프에서의 밤 이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져, 이 최초의 글쓰기로 귀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것은 글쓰기라는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의 위태로운 횡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증명하는 이야기. 이런 것은 모두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깊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게 되어있으나 그 진실을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믿음."
"내가 쓴 것의 기억은 벌써 지워지고 있다. 나는 이 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책을 쓰면서 뒤쫓고 있던 것마저도 녹아 없어져 버렸다. 나는 종이 더미 속에서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의도처럼 보이는 메모를 발견해 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닌 무시무시한 현실성과 몇 년이 흐른 후 그 벌어진 일이 띠게 될 기묘한 비현실성 사이의 심연을 탐색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