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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Mar 30. 2023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그녀의 책에 담긴 텍스트가 사유의 바다에 서서히 번지며 심연 어딘가를 자극한다. 의식적으로 외면하지 않아도 알아서 숨죽이고 있던 심연의 어떤 것이 살며시 날개짓을 한다. 타자를 인식하지 못함에서 오는 막연한 불편함에서 비롯된 순응과 저항 어딘가를 오가던 시간들, 타자를 인식하고 존재의 유무도 분명하지 않은 주체라는, 실체라고 상정한 실체를 찾아 헤매던 시간들, 세이렌의 목소리와도 같이 불수의적인 움직임을 자극하는 내 안의 타자에게 타협도 순응도 저항도 할 수 없어 자기 초월에 희망을 걸어보는 요즈음. 이 책에 담긴 텍스트의 잔상이,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떠나지 못하고 내면 어딘가를 부유한다. 내가 그녀의 1958년, 하나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화되어 가는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의 잔상에 시달리는 건, 나도 언젠가 변화의 장에 서있던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런 이들이 있다. 타인들의 현실에, 그들이 말하고 다리를 꼬고 담뱃불을 붙이는 방식에 사로잡혀버리는, 그들은 덫에 걸리듯 타인들의 존재에 붙들린다. 어느 날, 아니 그보다는 어느 밤, 그들은 오직 단 한 명의 타자가 지닌 욕망과 의지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자신이라 믿어왔던 것들은 자취를 감춘다. 그들은 사라지고, 자신의 상이 움직이고 복종하며 상황을 알 수 없는 흐름 속으로 휩쓸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은 언제나 타자의 의지에 뒤처져 있다. 타자의 의지는 언제나 한 발 앞서 있다. 그들은 결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시선에 사로잡혀 즉자존재 -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로 변해버린 순간이 있었다. 그 시선의 주체도 그 누군가의 시선에 사로잡혀 즉자존재로 변하는 순간이 있었을까.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 나는 감당하기 힘든 이 순환과 반복의 현실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뒤센느를 1958년 8월 14일 그곳으로 들여보내려 하는 순간, 나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든다. 이건 대개의 경우 내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어떤 어려움 앞에서 글쓰기를 포기하려 할 때 찾아오는 전조다. 기억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기억 속 이미지들-방, 원피스, 에마이 디아망 치약 등등(기억은 미치광이 소품 담당자나 다름없다)- 이 서로 이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나를 의미 없는 영화에 넋을 잃은 관객으로 만들지 않도록 저항해야만 한다. 내게 직면한 문제는 차라리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 여자아이, 아니 D의 행동과 행복, 고통을 반세기 전 사회의 규칙에 따라, 그녀도 캠프의 다른 누구도 속하지 않았던 더 '진보된 ' 사회의 소수를 제외한 당시 모든 사람에게 명백했던 정상성에 따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


모든 것은 사후적이다. 나의 불편함은 당시 내 주변의 너무도 명백했던 정상성에 가볍게 편승할 수 없었음에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 어쩌면 미치광이 소품 담당자나 다름없었던 기억...


"사실 내가 원했던 한 가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이고 감지되는 증거를 갖는 것. 마치 내가 계속 쓰기 위해 그들이 살아있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허구의 존재라는 비물질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평온 속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주는 위험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서 쓸 필요가 있는 것처럼. 글쓰기를 지속하기 어려운 시도로 만들 필요. 글쓰기가 지닌 권능을 - 수월함은 아니다. 아무도 나만큼 쓰는 걸 힘들어하진 않는다-글쓰기가 가져올 결과를 상상하며 느끼는 공포로 속죄할 필요."


죽음 이전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의 실체를 마주하기보다, 죽음 이후 찾아온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감성적인 언어로 포장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그 덮개를 열고 얽힌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갔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이 주는 위험을 감내할 자신이 없음을 알기에, 그러한 이유로 끊임없이 도피를 꿈꾼다.


"글을 써나갈수록, 내 기억 속 이야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단순함이 사라진다. 1958년의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은 수년에 걸쳐 내가 축적해 온 여러 해석들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윤색하지 말기. 나는 허구의 인물을 축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였던 그 여자아이를 해체하는 것이다."


나도 언젠가 나였던 과거의 한 여자아이를 해체할 수 있을까... 그 여자아이를 해체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그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해체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녀가 느끼던 행복이 진짜라는 걸 알고, 그녀가 그 행복을 진짜라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행복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는 빨간 수첩에 베껴 적은 문구에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경험하는 동안 즐기고 있단 걸 알아차릴 수 있는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다.(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행복이라는 감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사건은 의미나 일화가 아닌 섬광기억으로 인식된 바로 그 순간이 아닐까. 행복은 불수의적으로 오감에 각인된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은 아닐까...


"자주, 나는 내 책을 끝마치고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 집히기도 했다. 그 생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출간에 대한 두려움인지, 완성했다는 만족감인지. 책을 다 쓰고 나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부를 쏟아 넣을 수 있는 막연한, 열정을 불러일으킬 것 같은, 어떤 것을 찾아 서성이는 사람들...


"그녀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의 자기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를 상상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배운 것이 어떤 미래를 불러올지는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다."

삶은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어떤 치밀한 계획과 예측도 크고 작은 우연으로 인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된다.


"이 사진을 계속해서 바라보며 내가 원했던 건 1959년의 그 여자아이가 다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고 있는 현재-내가 창문 앞의 책상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가 아닌, 다른 현재가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감각을 포착하는 게 아닐까? 연약하고 어쩌면 무용한 정복이지만, 사유의 힘과 우리 삶의 통제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전(前) 현재가 불러일으키는 감각"


현재에서 바라본 전(前) 현재의 의미는 사후적인 해석일 뿐이다. 오늘을 잘 살아가기 위해 위장도 위선도 아닌 대상으로의 시선으로 전(前) 현재가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느껴볼 것.


"존재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사사가 추구하는, 지배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는 언제나 이런 점들이 빠져있다. 경험하는 순간 경험한 것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 모든 문장, 모든 단언에 구멍을 뚫어야만 하는 현재의 불투명함."


결핍에서 발생하는 불안함과 불투명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우드사이드파크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이 이미지로부터 내가 자석에 이끌리듯 끌려왔던 것은 아닌가 자문하고 있다. 캠프에서의 밤 이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져, 이 최초의 글쓰기로 귀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것은 글쓰기라는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의 위태로운 횡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증명하는 이야기. 이런 것은 모두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믿음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깊이 우리 안에 뿌리내리게 되어있으나 그 진실을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믿음."


나는 지금의 '나'로 이어지는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찾아 헤맨다. 마치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진 것 같은 막연한 불편함의 기원이 되는 사건을 찾아서...


"내가 쓴 것의 기억은 벌써 지워지고 있다. 나는 이 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책을 쓰면서 뒤쫓고 있던 것마저도 녹아 없어져 버렸다. 나는 종이 더미 속에서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의도처럼 보이는 메모를 발견해 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닌 무시무시한 현실성과 몇 년이 흐른 후 그 벌어진 일이 띠게 될 기묘한 비현실성 사이의 심연을 탐색할 것."


내가 나에게 하는 말.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연 어딘가에 부유하며 나아가지도 주저앉지도 못하게 하는, 나를 작동시키는 장치가 되어버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찾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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