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발을 딛고 서서, 실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동요와 결핍의 원인을 찾아 뒤돌아보고, 그 원인을 찾아 매일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되새기고, 기억을 반복하고, 도래할 미래의 시간을 두려워하는 삶이 아닌, 스스로 그러하게 흐르는 자연의 시간에 동화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
반복되는 일상과, 인간의 숙명과도 같이 벗어날 수 없는 사회라는 관계의 숲에서 길을 잃은 다큐영화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삶의 의미를 찾아 남아프리카로 떠난다. 남아프리카의 한 바닷가,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같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바다의 온도에 적응해 갈 때 즈음, 그는 어느새 익숙해진 바닷속 유영에서 우연한 시선에 포착된 문어에 호기심이 생긴다. 그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문어와의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 매일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크레이그의 문어를 향한 시선과 문어를 향해 서서히 느껴지는 교감에 내 시선과 마음도 서서히 바다를 향한다. 크레이그의 반복되는 문어를 향한 시선에 이어, 그의 손끝을 서서히 타고 오르는 문어와의 짜릿한 첫 감촉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문어의 생존을 위한 사냥, 문어가 갑각류를 쫓을 때 포식하는 방법이 궁금했는데 여러 번의 실패 후 바닷가재를 위에서 덮쳐 온몸으로 감싸고 예리하게 구멍을 내어 잡아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어서 천적인 상어를 피해 바위에 숨어있다가 다리 하나를 통째로 뜯겨서 기운을 잃고 숨죽이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는데, 어느새 조그만 다리가 생성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 섭리, 문어가 쫓기는 모습을 보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크레이그의 모습을 보고, 나 또한 공감하며,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문어의 뜯긴 다리가 다른 다리만큼 자라났을 즈음 문어는 다시 상어에게 쫓긴다. 상어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다 육지로 오르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와 재빠르게 빨판을 이용해 갑각류의 껍질들로 몸을 감싼다. 결국 상어 등위에 올라 생명을 부지하는 문어의 생존전략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한가로운 한때, 문어가 선천적인 목표 지향성을 잠시 내려놓고 물고기와 한가로이 놀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평화로운 나날을 뒤로하고, 문어가 종족의 보존을 위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그 알들을 온몸으로 감싸고, 부화하는 모습에서 생명의 신비가 느껴진다. 알을 부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청소 물고기와 상어에게 몸을 내어주는 모습에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자연의 섭리에 수긍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며 나 또한 인간의 삶에서 어떠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근에 본 심리 관련 책에서 읽은 연구 결과 중에 인간이 생의 후반기에는 양육과 자기 복제를 향한다는 것과 문어의 부화를 위한 희생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진다.
2년간 힘들었던 삶에 의해 대서양 외딴 바다를 찾아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고, 우연히 문어와 만나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은 크레이그 포스터의 아들과 평화로운 한때가 따스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바닷속 생명체들과, 잔잔한 배경음악, 그리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내레이션이 마음에 울림을 전한다. 크레이그는 문어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바닷속 일상의 체험을 통해 서서히 관계의 복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마음 근육이 재생되고 아들과도 한 층 더 가까워진다. 아들과 바다를 유영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과 그때 아들의 손 위에서 서서히 움직이던, 다큐의 주인공인 암컷 문어의 수많은 알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 가능한 아주 작은 문어를 눈과 마음에 담아본다. 끝으로 자연의 섭리에 포함된 순환의 과정이라고 여겨지는 문어의 죽음을 인간의 삶의 주기에 견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