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cannot be Cancelled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오랜 시간 함께 한 미술평론가 마틴 게이퍼드가 그림과 일상의 사유를 매개로 나눈 우정 어린 담화가 담긴 책이다. 몇 년 전,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낯선 질병으로 인한 혼란 속에 고립되는 고통과 마주했을 때, 80세가 넘은 예술가는 ‘봄’을 주제로 그림과 이야기를 전한다. 삶의 여정에서 마주한 낯섦과 혼돈에서 기인한 부정적인 감정과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봄은 오기 마련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하루하루 변해 가는 자연을 기록한 그의 그림들이 봄의 문턱에서 불현듯 차갑게 불어오는 비바람소리를 토닥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이 책은 16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베마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을 걷는 것과 같이 작은 제목에 담긴 의미를 따라가보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내 안의 흔적이 속삭이는 시선을 따라….
1. 뜻밖의 이주
작가로 살아온 60년 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적 없는 호크니에게 있어 장소의 변화는 작업의 변화를 암시하는 새로운 계획의 전주곡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호크니가 노르망디로 떠나기 전 수개월 동안 관심을 갖고 수행했던 작업과 연결된다. 그의 작업은 역원근법에 대한 플로렌스키의 사유에서 시작해 다중심적 시선으로 이어져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가 호베마의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 길>이라는 작품을 해체하는 연구였다. 호크니는 호베마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연작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와 게이퍼드에게 노르망디에서의 야심 찬 계획을 알린다.
2. 작업실과 작업
호크니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작업실이다. 노르망디의 새 작업실은 호크니가 원하는 작업의 주제들로 둘러싸여 있다. 호크니는 그곳에서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작업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낸다. 그의 작업실은 그림을 그리는 곳이면서 그림이 구상되는 곳이고 이전의 그림과 다른 그림으로 발전되는 곳이기도 하다. 호크니가 제목을 붙인 귀스타프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과 조르주 브라크의 <작업실Ⅱ>와 같이 화가의 작업실은 화가의 정신세계가 담긴, 미술가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화가와 함께하는 조수들 또한 작업에 있어 실질적인 측면만큼이나 감정적, 심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존재다.
3. 프랑스적인 삶: 보헤미안 스타일의 프랑스 생활
호크니는 여행을 삼가라고 했던 렘브란트나, 집에 머물며 친숙한 장소를 그렸던 존 컨스터블과 달리 여러 곳을 여행한 윌리엄 터너처럼 여러 나라에서 작업했다. 노르망디는 70년대 파리에 이어 그의 두 번째 프랑스 체류다. 호크니는 보헤미안의 의욕 넘치고 창조적인 삶의 방식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내적 규율에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거투르드 스타인, 스콧 피츠제럴드와 같이 뛰어난 예술가들이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을 말하며 그것이 예술가들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호크니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예술적으로 사랑한 피카소를 비롯한 보헤미안적인 예술가들에 매료되어 파리에 체류했었고 같은 이유로 노르망디에 체류하고자 한다. 호크니는 자유로움 속에서 매일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엄격한 삶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4. 선과 시간
호크니에게 작업이란 즐거운 일이면서 습관이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종류의 선과 연결된다. 어떤 미술사가는 호크니의 다양한 선을 보면 그의 작업의 연대기를 조합할 수 있다고 한다. 호크니는 클림트와 렘브란트 그리고 고흐까지 다양한 종류의 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한 감식안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연의 정확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과 로마네스크 양식 자수의 걸작이자 르네상스 이래 서구 예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재현한 <바이외 테피스트리>는 노르망디 작업실에서 펼쳐지는 호크니의 작업에 마중물이 되어준다.
5. 메리 크리스마스와 예상 못한 새해
호크니는 건강한 삶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을 추구한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온전한 의미에서 삶을 즐기는 것, 즉 세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경험하고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2월, 호크니는 런던에서의 전시를 마치고 봄이 오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르망디에 돌아갔고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확산에 의해 고립된다.
6. 봉쇄된 천국
게이퍼드와 호크니의 책 『그림의 역사』에서 호크니가 “이제 우리가 원한다면 가상 세계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세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곳은 바로 그림의 세계다.”라고 말했듯이 코로나19에 의해 서로의 공간에 고립되어 가상공간에서 소통하게 되었다. 호크니는 고립의 시간 동안 자신의 정원에서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이 진정한 것이라 믿으며 아이패드 그림으로 바깥세상과 소통했다. 가상경험이 실제 대상을 보는 경험을 대체할 수 있을까. 가상경험이 실제경험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월터 시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가는 한 조각의 부싯돌을 가지고 그것을 비틀어 장미유 방울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화가는 가장 가망성 없는 돌덩어리에서 즐거움과 시를 발견할 수 있다.
7. 미술가를 위한 집과 화가의 정원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은 원예가나 나무 애호가, 잔디 애호가가 정원을 만드는 일과는 다르다. 화가의 정원은 꽃이나 완벽한 나무가 아닌 흥미로운 그림을 낳기 위해 계획되는 법이다. 미술가의 집과 미술가의 작업은 때로 공생의 관계를 맺는다. 주변 환경은 그림의 주제를 제안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환경은 그림으로 그리기에 보다 적절하도록 조정될 수 있다. 사실상 이것은 긍정적인 순환 고리를 이룬다. 고흐는 “이곳 사물들의 진정한 본성을 알려면 그들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고 그려야 한다. 나는 계절이 오는 것을 볼 것이고 같은 주제를 계속해서 다룰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같은 장소에 머무를 때만 누릴 수 있는 장점이다. 고흐와 호크니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작은 지역을 다뤘다.
8. 하늘, 하늘
“일몰 사진은 늘 상투적입니다. 사진에는 움직임이 없고 따라서 공간도 없죠. 하지만 그림에는 움직임과 공간이 담깁니다. 나는 매일 아침 하늘을 바라봅니다. 매일매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호크니의 풍경화는 우리가 멈추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광경(새벽, 비, 나무, 지는 해)이 실제로는 얼마만큼 끊임없이 움직이는지를 강조한다. 해돋이를 담은 호크니의 짧은 영화는 그 자체가 장관을 이루는데 미술사에서 전례 없는 새로운 것이며 ‘호크니 모노크롬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소실점으로 인해 보는 이를 고정시켜 버리는 원근법과 기하학적 도시를 극도로 싫어하는 호크니는 공간 속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유를 필요로 하면서 내면의 공간과 외부의 공간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호크니는 자신이 현재 그리고 있는 모든 그림들이 우리 주변 생물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호크니의 풍경화가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9. 화려한 검은색과 한층 더 섬세한 초록색
켜켜이 포개진 물감 층으로 이루어진 애드 라인하르트의 검은색과 호크니의 관찰의 결과물인 서로 다른 다양한 초록색. 분명 두 사람은 정반대의 태도를 갖고 있지만 색의 미묘함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한다. 호크니가 색을 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색의 미묘함을 의미한다. 호크니는 색을 능숙하게 구사하려면 색채에 대해 알고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색이란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측면을 뜻하지만 색채를 전적으로 객관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의 눈이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이 재현하는 방식으로 색채를 경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색을 경험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변형시켜 원하는 대로 채색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호크니는 더 나아가 색의 영속성을 추구한다. 고흐나 쿠르베 그리고 워홀의 작품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색이 어두워지는 것에 반해 호크니는 서서히 건조되는 아크릴 물감에 광택제를 사용해 색이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10. 더 작은 물방울
호크니는 트리스탄 굴리의 『물을 읽는 법』에 나오는 “우리는 마을 연못을 관찰함으로써 세계의 가장 큰 대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을 언급하며 “잔물결과 첨벙하고 튀는 물방울의 언어는 동일합니다. 나는 지금 우리 집의 작은 웅덩이에 떨어지는 비를 묘사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그림에 ‘좀 더 작은 첨벙’이라는 제목을 붙일 겁니다.”라고 답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튀어 오르는 물방울의 속도보다 수신한 정보를 해석하는 감각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다. 호크니는 빗방울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수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관찰한다. 호크니는 물방울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수영장 자체가 아니라 물과 투명성이다. 나는 춤을 추는 선들이 수면 아래가 아닌 수면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연못에서 수면과 그 아래의 깊은 부분을 봅니다.”
호크니는 투명성을 주제로 다룬 17세기 조지 허버트의 시를 즐겨 인용한다.
“유리의 표면을 보는 사람은
유리를 주시할 수도 있고
원한다면 유리를 관통해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나면 천국을 보게 되리라.”
11. 모든 것은 흐른다
호크니는 “모든 것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진과 대조적으로 드로잉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나는 대상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쉬지 않고 그려야 한다고 말한 세잔의 말을 좋아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항구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죠. 나는 내 그림 안에 시간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림들은 항상 흐르고 있습니다. 자연이 항상 흐르는 것과 똑같은 이치죠.”라고 말한다. 호크니의 이와 같은 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 “만물은 유전한다.”를 반향 하며 또한 앞서 말한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상기시킨다.
12. 잔물결 치는 선과 음악적 공간
호크니는 열다섯에서 스무 살까지 음악교육을 받으며 19세기의 훌륭한 음악을 모두 들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베토벤과 바그너는 우상이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양한 감각들을 가로지르기 위한 연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호크니는 자신이 상호 참조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소리와 공간, 색채, 선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에 노련하다.
13. 번역의 누락(과 발견)
우리는 대개 번역이란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번역 또는 전환이 있다. 예를 들어, 드로잉에서 회화로, 석판화에서 에칭 판화로 바뀌는 경우처럼 어느 한 시각 매체로부터의 변화는 유형의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소설을 연극이나 영화로 각색하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호크니는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 동화를 해석한다. 1969년 350편에 이르는 그림형제 동화를 모두 읽고 쓴 『여섯 편의 그림 형제 동화』와 10년 뒤 발표한 안데르센의 동화 『나이팅게일』이 대표작이다. 『나이팅게일』은 화음과 리듬, 멜로디의 음악언어로 옮겨진 문학작품을 청중들이 보고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극적인 언어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14. 피카소와 프루스트, 그리고 그림
호크니는 오랫동안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그림들이 함께 결합되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룰 수 있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 피카소의 작품을 다룬 크리스티앙 제르보스의 도록에 실린 그림을 보고 회화 연작이 자체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35점의 여성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린, 즉 보는 방식의 발명이라 할 수 있다. 호크니는 모든 사람이 같은 그림을 본다 해도 반드시 동일한 것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프루스트의 소설이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간과 지각의 상관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호크니가 말하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본질적으로 세계를 입체주의 박식으로 보는데, 무수한 관점과 시간의 순간들을 하나의 총제로 통합시킨다. 프루스트의 한 가지 통찰은 호크니가 자주 피력하는 견해와 상당히 유사하다. 호크니는 ‘우리는 기억을 통해 본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이전에 보았던 것에 비추어 이해한다. 이것이 프루스트가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오직 서로 다른 순간의 이미지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본 이유다. 이것은 호크니가 1980년대에 제작한 포토콜라주와 일맥상통하는 문학적, 심리학적 등가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호크니의 포토콜라주는 주제가 되는 대상을 각기 다른 시간에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무수한 사진들로 구성된다. 호크니는 사실상 매우 프루스트적인 미술가다.
15. 어딘가에 있다는 것
호크니는 반 고흐가 미국에서 가장 따분한 모텔에 묵는다 해도 물감과 이젤만 있다면 갇혀 지낼 수 있으며 2,3일 뒤에는 잊지 못한 아름답고 매혹적인 그림을 들고 나타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깊고 상세한 관심의 시간이 쌓여 익숙하고 이해가능해지는 것이며 이러한 풍경이 화가가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들을 담은 소우주가 된다.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을 보는 사람이다. 터너처럼 새로운 풍경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는 화가들이 있는가 하면 컨스터블이 ‘집에 머무는 사람들’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같은 유형의 화가들도 있다. 어느 곳이든 동일하게 영감을 줄 수 있지만 모든 곳에서 정확하게 일치하는 조건을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장소의 변화는 차이를 낳는다. 호크니에게 있어 노르망디의 자연은 무수히 많은 매혹적인 드로잉을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6. 노르망디의 보름달
하늘이 더 오랜 시간 맑은 상태를 유지하는 노르망디의 밤, 호크니는 몇 시간 동안 잔디밭에 나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다. 호크니는 늘 열정을 따라 움직인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듯 호크니 또한 그렇다. 호크니의 언어 구사 역시 다르지 않다. 그의 관심사는 매우 전문적이고 심오하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전염병이 유행하고 그에 따른 봉쇄가 이어진 시간, 호크니는 더 작은 세상에서 더 많고 많은 것을 발견한다. “나는 밖에 나갈 때마다 그릴 만한 대상을 봅니다. 그저 어딘가를 보고 그리기 시작합니다. … 나는 이곳에서 한 해 더 머물 작정입니다. 또 한 번의 봄과 여름, 가을을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