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담긴 의미를 찾아서 ….
1942년 프랑스.
한 남자가 흔들리는 시선과 비틀거리는 듯한 발걸음으로 숲 속을 걷는다. 이어지는 장면은 불길에 휩싸인 수많은 이름이 적힌 종이들…. 그리고 트럭에 실려 어딘가로 끌려가는 사람들.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한 남자가 귀중한 책이라며 음식을 바꿔줄 사람을 찾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 질은 샌드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책에 대해 질문한다. 책 소유자는 집주인이 놓고 간 책이라고 말한다. 질은 샌드위치와 책을 바꿔준다. 책에는 ‘레자 준’이라는 이름이 쓰여있다. 누구인지 묻자, 집주인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잠시 후 그들은 트럭에서 내려져 어디론가 끌려간다. 내리자마자 유대인들 무리를 향해 총이 발포되고 질은 큰 소리로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말한다. 마침, 페르시아인을 찾는 장교 코흐가 생각난 사병은 그를 데려가려 한다. 그렇게 그 남자는 죽음의 순간을 모면한다.
상식과 위배되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책을 샌드위치와 바꿔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럭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된 질의 배경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질의 아버지는 랍비다. 랍비는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성서를 바탕으로 한 유대교의 율법을 가르쳐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아버지가 랍비라는 것은 그의 책과 언어에 대한 남다름의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계율이나 문서는 질에게 있어서 무의식적 상수로 작용하는 일종의 핵심 신념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책과 샌드위치를 바꾸려는 남자가 책이 집주인 것으로 그냥 가져왔다고 말하자 그에게 훔쳤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보아 윤리의식이 충실함이 시사된다. 하지만 책을 가진 남자가 질에게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지 물어보자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통해 질의 유연한 사고를 엿볼 수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 또한 짐작할 수 있다. 회의나 성찰 없이 자신의 신념을 수행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른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대비를 보여주는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인이 된 질은 코흐 대위에게 끌려간다. 코흐는 그 질이 페르시아인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한다. 질은 아버지는 페르시아인이고 어머니가 벨기에인이라고 말한다. 코흐는 책에 쓰인 이름 '레자 준'이 누구인지 물어보고, 책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그 남자는 책에 쓰인 이름이 자기 이름이라고 말하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읽고 쓰는 것은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질의 이름은 레자 준이 된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준비되지 않은 대답으로 상황을 모면한 레자는 코흐의 페르시아어 수업을 맡는다.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이란에 있는 동생을 만나 식당을 차릴 것이라고 말한다. 코흐는 자신에 찬 어조로 하루에 4개의 단어를 꾸준히 암기한다면 언젠가 페르시아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아슬아슬한 레자의 페르시아 수업에 첫 번째 위기의 시간이 다가온다. 하루에 4개의 단어를 공부하기로 했던 코흐의 약속이 레자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갑자기 40개의 단어로 늘어난다. 레자는 암기를 위해 코흐에게 필기도구를 요청해 보지만 거절당한다. 레자의 자포자기하는 듯한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질투와 시기로 음해하던 사병들은 레자가 도망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레자는 도망가려 해 보지만, 어디서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에 다시 수용소로 돌아온다. 때마침 코흐는 레자를 찾고 그에게 유대인들의 명단을 기록하는 일을 시킨다. 그 일을 맡았던 여자 사병이 코흐가 원하는 글씨의 정렬을 맞추지 못해 코흐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자의 글씨체와 글씨의 배열은 코흐를 만족시킨다. 유대인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레자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린다. 이름과 대상의 연상을 활용한 암기. 레자는 부대원과 유대인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일을 하기에 유대인들의 배식을 담당하기도 한다. 레자는 배식을 하는 유대인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과 외형적 특성을 매치하여 단어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름 짓기, 구별 짓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에는 그들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아름다움, 질투, 사랑, 승리, 해와 달, 술과 황홀경 등…. 우리 이름과 차이가 있다면 구별 짓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이름이 곧 특성이자 정체성이다. 우리에게 이름이 부여되는 것은 나와 타인의 구별 짓기의 필요성에 있다. 태초의 이름은 내가 지을 수 없기에 이름 짓는 자의 소망이 담긴다. 병약한 신체로 태어난 칸트에게 임마누엘이라는 뜻의 바람이 담긴 이름을 지었듯이…. 때로는 주 양육자의 마음에 두었던 이름이 아기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발음이 좋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름을 짓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전에는 사주에 따라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 부여받은 이름은 단지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후 이름은 호명의 수단일 뿐 ‘나’라는 주체의 자리는 당시의 사회적 상징이 담긴 언어들로 대체된다. 사회적 상징이 아닌 한 사람의 계보학적 역사가 담긴 정체성이 이름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스스로 선택한 호號가 아닌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 하나의 단아로 집약될 수 있을까. 레자의 눈에 비친 대상이 감각적으로 재탄생하는 단어의 의미를 상상해 본다.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단어로 귀결될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유사할까, 상이할까.
레자는 코흐의 의심에서 벗어나 유대인들을 기록하는 일과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유지한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고 위기가 찾아온다. 어느 날 장교들이 야유회를 가게 되고, 레자는 행사에 동원된다. 음식을 준비하는 레자에게 코흐는 즐거운 표정으로 나무가 페르시아어로 무엇인지 질문한다. 레자는 ‘라지’라고 대답한다. 코흐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하며, 빵이 ‘라지’였다고, 더러운 유대인이라고, 말하며 레자를 심하게 구타한다. 레자는 발음은 같지만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말해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바로 채석장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행해진 극심한 노동으로 레자는 사경을 헤매고 쓰러진다. 정신을 잃은 레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군인들이 코흐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코흐는 레자를 방문한다. 코흐는 레자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레자의 말은 레자와 코흐만이 알 수 있는 레자의 페르시아어였다. 엄마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코흐는 레자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군의관에게 레자를 보살피도록 지시한다. 코흐는 레자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 등 레자에게 친밀감을 표현한다. 어떻게든 레자를 살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레자와 한 층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코흐는 레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나치 당원이 되었으며 동생과는 어떻게 멀어지게 됐는지 이야기한다. 레자는 지금까지 배운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상상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의 정신세계…. 혼수상태에서 읊조리듯 레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어머니와 집에 대한 소망이 담긴 페르시아어 한 문장….
하지만 안정적인 삶은 지속되지 않는다. 늘 레자를 의심하던 군인은 수용소에 새롭게 들어온 유대인 중에 페르시아인을 발견한다. 그는 레자를 없애버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그를 데려온다. 그 군인은 레자를 데리고 페르시아인을 만나러 가는데,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레자가 도움을 주었던 이탈리아 유대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코흐는 페르시아어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졌다며 아쉬워하며 레자를 위로한다. 코흐는 유대인들이 처형을 당하러 가는 날에는 레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다른 곳으로 피신시킨다. 하지만 레자는 같은 수용소의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이 자신도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이탈리아 유대인의 동생을 대신해 죽음을 향해 가는 유대인들 무리로 스스로 들어간다. 이를 알게 된 코흐는 정신없이 달려가 레자를 구한다. 코흐는 격앙된 목소리로 레자에게 묻는다. 왜 이름 없는 사람들 무리에 껴서 죽으려 했느냐고…. 레자는 답한다. 이름이 없는 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어도 저들은 코흐처럼 나약하지 않다고. 적어도 살인자는 아니라고. 그리고 코흐에게 살인자라고 말한다. 코흐는 자신은 음식을 담당하기에 살인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레자는 코흐에게 “살인자를 배불리 먹였잖아요”라고 말한다. 코흐는 말없이 레자를 데려간다.
나치가 연합군에게 패하자 퇴각 명령이 떨어진다. 레자를 의심했던 병사는 부대가 퇴각하는 순간까지도 레자가 코흐와 도망간다며 사령관에게 고발하는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를 한심한 듯 쳐다보는 사령관…. 코흐는 레자를 데리고 부대를 빠져나와 살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켰다고 말한다. 그들은 부대를 빠져나와 서로 다른 길을 향한다. 눈길을 걷는 레자. 이란 공항에 도착한 코흐. 코흐는 벨기에 여권을 내밀며 자신이 벨기에인이며 이란에서 식당을 할 예정이라며 레자가 발명한 페르시아어로 말한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란 공항의 군인들…. 이상한 말들로 인해 오히려 독일인임을 의심하게 만들고, 소리치며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붙잡힌다.
코흐는 왜 벨기에 여권을 만들었을까. 레자가 처음 코흐를 만났을 때 아버지는 페르시아인이며 어머니는 벨기에 사람이라 말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
다시 영화의 시작과 마주한다. 연합군과 마주 앉은 레자. “당신이 수용소에 있는 동안 대략 몇 명의 수용자가 그곳을 거쳐 갔습니까?” 레자는 연합군 2만 5천에서 3만 명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레자에게 기억나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레자는 기록된 문서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문서는 모두 나치가 모두 불태웠다고 말한다. 그러자 레자는 2840명의 성과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죽어간 유대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천천히 이야기한다. 레자의 목소리가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레자가 아닌 다시 그의 이름이 되어간다.
레자의 초자아와도 같은 핵심 신념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유대인 형제, 그 형은 말 못 하는 동생을 무사히 데리고 가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군인들에게 대신 구타를 당한다. 구타로 인해 생명이 위태로워진 동생을 보며 연민을 느낀 레자는 코흐에게 받은 음식을 동생에게 갖다 준다. 레자의 도움으로 동생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형은 고마움으로 레자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던 것이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죽이고 총살을 당한다. 레자 또한 남은 동생을 위해 대신 죽으려고 한다. 코흐에게도 동생이 있다. 코흐가 나치당원이 된 뒤 형과 신념이 달랐던 동생은 이란으로 떠났다. 동생을 만나러 가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배우는 코흐에게 레자는 어떤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연민이란 관계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필수적인 정서이지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을 때는 억제되어야 할 정서일 수도 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의 설치 작품들과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난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생각의 연쇄작용으로 머리를 떠나지 않던, 나와 마주했던 수많은 얼굴들이 수많은 이미지로 중첩된다. 상담 과정에서 느꼈던 선명했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저편으로 스러진다. 더 늦기 전에 소중한 흔적들을 한 장 한 장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