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또 다른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
반복적 수행이 고인 물이 아닌 ‘되어가기’로 이끌어 갈 것이란 믿음으로 묵묵히 수행자가 된 듯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세상을 둘러보았을 때, 사람들 사이 외딴섬에 나 혼자 살고 있는 듯 느껴진다. 나 혼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밀려드는 부조리와 불평등이라는 생각이…. 연일 쏟아지는 숫자의 오름과 내림을 주제로 한 기사들….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말들의 홍수에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 그리고 우울감…. 내가 상상하는 ‘멋진 신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상호 주관성을 바탕으로 한 ‘멋진 신세계’가 가능할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쌓았다 부수며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절대적 주관성, 개별적 환상의 실재에 만족해야 할까. 그럼에도 오늘의 나를 위해, 환상 속 어딘가의 ‘멋진 신세계’를 꿈꾸며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인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문제들 앞에 마주 서 있다. … 인간의 삶은 유토피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과 교양인은 유토피아를 회피하며 불완전하지만 자유로운 비 유토피아적인 사회로 돌아가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것이다.” -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1932년에 발표된 디스토피아 소설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공유·균등·안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상적 대안을 실현하는 인류의 미래를 보여준다. 소설의 무대는 포드 기원이라는 연도를 사용하는 먼 미래의 유럽이다. 그곳의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 조작과 배아 처리를 통해 알파(α), 베타(β), 감마(γ), 델타(δ), 앱실론(ε), 5개 계급으로 운명이 결정된다. 그들은 수면시 교육법을 활용한 조건반사적 단련을 통해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고 사회 체제에 순응하도록 세뇌당한다. 미래 세계 인류는 부작용 없는 환각제인 소마를 복용함으로써 고통과 우울감에서 해방된다. 반복 학습과 소마는 국가가 시민들을 통제하고 행복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소설을 따라 펼쳐지는 이러한 비현실적 공상의 세계가 지금, 여기 내 생각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멋진 신세계’는 ‘공유·균등·안정’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조건반사 양육소에서 이곳의 최고 권위자인 소장이 견습생들에게 각 부서를 보여주고 설명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곳 인공부화소에서 인간 배아는 한 개의 난자로부터 하나의 태아가 나오는 알파와 베타 계급과 성장억제조치인 보카노프스키법에 의해 96명으로 증식시킨 감마, 델타, 앱실론계급으로 분류된다. 소장은 보카노프스키법이 사회안전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인공부화소의 태아는 계급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는 직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 육체의 판단을 저절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련된다.
견습생들은 수정실· 부화실을 지나 유아보육실·신파블로프식 조건반사 양육실을 향한다. 병에서 태어난 아기들에게 부모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밖에 사회 안정을 위해 역사 또한 불쾌한 것으로 여긴다. 양육실에서 아이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지만 논리는 없는 조건반사 훈련이 반복되는 수면 교육을 받는다. 아이들의 판단하고 욕망하고 결정하는 의식은 반복되는 수면 교육에 의한 암시로 조작된다.
조건반사식 교육에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성희가 포함된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기에 평생 자유로운 성적 관계가 권장되며 부모라는 개념이 없기에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포드 제국의 교육 주체는 과거 아버지와 어머니를 주축으로 하는 가족 체계에 의해 광증과 자살이 충만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포드는 프로이트와 유사한 이름으로 가족생활의 위험을 폭로한 최초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자유연애의 억압이 충동의 억제로 이어져 범람하여 감정의 격정이 일어나고 마침내 광증이 되기에 가로막지 않은 강물이 지정된 수로를 따라 평온하게 흘러가서 행복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소장에 이어 첫 번째 등장인물은 레니나 크라운이다. 그녀는 조건반사식 교육에 잘 길들여 있지만 한 남자와 오랜 연애 기간을 이어가고 있어 주변 동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획일화된 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 정연하게 사회를 운영하는 사람은 몇몇 지배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획일적인 사회에 반감을 보이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배양되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주입되었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상층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육체를 갖지 않은 버나드 마르크스와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상층계급의 소양이 있지만 전체주의 정책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헬름홀츠 왓슨이다. 다음은 버나드와 헬름홀츠의 사유가 드러나는 대화의 한 부분이다.
육체적 결함은 일종의 의식의 과잉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역逆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의식의 과잉은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독을 택하고 스스로 눈과 귀를 멀게 하여 인위적인 금욕주의적 불능자로 만든다. 헬름홀즈가 버나드에게 말한다. “자네는 지금까지 자네의 내부에 무엇인가 숨어있어서 자네가 그것을 끄집어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느껴본 적 없나? 자네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여분의 힘과 같은 것 말일세. 그러니까 터빈 속을 통과하지 않고 폭포로 그냥 떨어지는 물고 같은 것 말야.”
여기서 육체적 결함에 의한 의식의 과잉은 버나드를, 의식의 과잉에 의한 고독의 자발적 선택은 헬름홀츠를 말한다. 어느 사회나 상징계의 질서에 쉽게 편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예술가 집단에서 예를 든다면,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 쇤 베르크 같은 사람들…. 그들은 통용되던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언어를 발명한다.
포드 제국에서는 인간을 통제하기 쉽도록 세뇌하기 위해 수면시 교육을 실시한다. 4년 동안 매주 3일 밤 1백 번씩 반복하는,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 12년 동안 반복하는 “모든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 수면시 교육의 전문가인 버나드는 국가가 추구하는 진리를 세뇌하기 위한 수많은 반복을 바보 같다고 말한다. 버나드는 포드 탄신일 축제에 참석하는데, 참석자 모두 그들이 믿는 위대한 존재와 융합되어 한 마음 한 목소리가 되지만 버나드는 융합되지 못한다. 레니나와 함께 레슬링 경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자 레니나가 버나드에게 기분 전환을 위해 소마를 권한다. 하지만 버나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냥 나대로 있고 싶습니다. 울적한 나대로가 좋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타인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레니나는 말한다. “개인이 감정을 가지면 사회는 동요하는 법이에요.”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감정은 소마에 의해 잠식되어야 한다. 버나드는 소마를 먹으라는 레니나의 권유를 뿌리치지만 결국 아이슬란드 전출 명령에 힘들어 소마를 삼킨다. 그는 소마의 효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마를 복용하고 5분이 지나자, 뿌리도 열매도 소멸되고 현재의 꽃만이 장밋빛으로 피어난다.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불안을 다스리는 약을 광고하고 우울증 약과 수면제는 일상이 되었다. 병을 예방하고 수치를 조절하여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약을 복용한다. 건강검진은 병의 조기 발견이라는 이로운 면도 있지만 먹어야 할 약과 검진의 횟수를 늘리는 듯하다. 정신건강을 위한 예산이 편성되고 있지만 정신건강이 지니는 광의적 의미에서 본다면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한다.
포드 제국의 이상은 9년 동안의 전쟁으로 엄청난 경제 붕괴를 겪으며 세계를 통제할 것인지 파멸할 것인지의 기로에서 안정을 선택한 결과다. 제국의 시민들은 안정을 위해 자신이 속한 분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60세까지 17세와 다름없는 능력과 기호를 유지한다. 죽음에 대해서 교육이 되어있어서 죽음조차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지금의 우리 또한 비슷한 듯하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시술과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레니나에게 호감이 있는 버나드는 전체주의 국가에 포섭되지 않은 뉴멕시코에 있는 야만인 보호구역에 같이 갈 것을 제안하고 레니나는 흔쾌히 제안에 수락한다. 레니나는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비위생적인 외모와 자연스러운 노화 그리고 젖을 먹이는 여자와 도태된 문명으로 여겨지는 그들의 일상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레니나에게 있어 처음 접한 태아 생식과 어머니로부터 행해지는 육아의 방식은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포드 탄신 예배나 기념일 축제를 상기시키는 그들의 풍습을 구경하고, 그곳에서 레니나가 호감을 느끼는 존 왓슨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존을 따라 그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어머니 ‘린다’를 만난다. 린다는 소장과 야만인 보호구역에 방문했다가 사라진 베타 계급의 여자였다. 린다는 버나드와 레니나를 격하게 반가워한다. 당시 린다는 소장의 아이를 가져서 포드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포드제국은 태아 생식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린다는 포드 제국에서 세뇌되어 야만인 보호구역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연애에 길들여 있어, 이웃 여자들에게 종종 공격을 당한다. 존은 야만인 구역에서 낳고 자랐기 때문에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 한다. 따라서 존은 린다와 친하게 지내는 포페와 린다의 자유로운 성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포페에게 받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배운다. 존이 하는 말들에 인용된 셰익스피어의 문장들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계속 미소 지으면서도 악인이 될 수 있다.”『햄릿』1막 5장 중에서…. ‘멋진 신세계’ 역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따온 문구다. 버나드는 존에게 포드 제국으로 떠날 것을 권유하고 레니나를 좋아하게 된 존은 그의 어머니도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며 흔쾌히 응한다.
런던에 온 린다는 존의 아버지인 소장을 만난다. 이 재회의 순간이 수많은 입소문을 만들어냈고 그로 인해 소장은 사임한다. 런던의 상류계급은 존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린다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어 린다는 집단 수용시설에 들어간다. 버나드는 존의 인기 덕분에 인기를 끌게 되고 버나드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 의식을 고조시켜 예전과 달리 자신을 인정하는 세계를 훌륭하게 여기게 된다. 존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여러 가지 발명품에 대해 외경심을 표명하지 않는다. 버나드는 제국의 총통에게 보내는 존에 대한 보고서에 존이 ‘영혼’이라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물질 환경에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고 작성한다. 존의 대변인이 되어 그의 일정을 관리하던 버나드는 존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부하자 상류계층의 버나드에 대한 태도가 돌변했고 그들의 비난으로 인해 버나드의 행복감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는다. 버나드는 자신의 행복을 대체할 희생물이 친구라고 생각하며 헬름홀츠를 떠올렸고 헬름홀츠는 버나드의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수면시 교육을 담당하는 헬름홀츠는 평소 행복만을 강요하고 고통이나 고독 또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금기시하는 교육에 불만이 있었다. 존과 헬름홀츠는 만나자마자 친해졌고, 버나드는 질투심을 느낀다.
존을 좋아하는 레니나는 존과 성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존은 이를 용납할 수 없어서 레니나를 좋아하지만 그녀를 강하게 거부한다. 존은 자신의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레니나의 성적 개방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레니나와의 관계를 정리한 존은 린다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부터 린다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존이 생각하는 죽음과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조건반사 훈련으로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죽음을 받아들인다. 존은 애틋한 마음으로 린다를 바라보지만, 린다는 포페와의 달콤한 환상에 빠져 존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어간다.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에 존은 절망하여 병원에서 뛰어나와 델타 계급의 군중 속으로 뛰어든다. 존은 소마가 들어있는 약상자를 꺼내어 자유를 외치며 마구 던지기 시작한다. 군중들은 포효하며 서로를 공격한다. 하지만 인조 음악기로부터 ‘이성의 목소리’와 ‘우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소마가 살포되자 델타 계급들은 서로 껴안고 키스를 나눈다.
존과 버나드 그리고 헬름홀츠는 총통의 서재로 안내된다. 총통이 존에게 문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존은 문명이 좋은 점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싫다고 답한다. 존이 자신의 생각을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들어 이야기하자 총통 또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으로 답한다. 총통의 반응에 존은 반가워한다. 총통은 극소수만이 과거의 책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의 불안정이 비극을 낳는 것이기에 안정을 추구해야 하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낡은 것은 쓸모없으며 행복을 위해 고도의 예술과 과학 그리고 종교를 희생시킨 셈이라 말한다. 총통은 버나드와 헬름홀츠를 아이슬란드로 전출시키려 한다. 버나드는 총통이 존과 친구로 여겨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헬름홀츠는 전출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버나드도 전출 명령을 받아들인다. 존은 총통에게 버나드와 헬름홀츠와 같이 아이슬란드로 보내달라고 하지만 거부당한다.
존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하며 낯선 두 도시 사이 언덕에 서 있는 낡은 등대를 자신의 은신처로 택한다. 존은 그곳에서 문명의 물질을 거부하며 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고립된 삶은 허용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취재하러 몰려들고 확성기로 “몇 그램만 먹으면 악귀는 사라진다.”, “고통을 망상이다.” 등을 외치며 존을 괴롭힌다. 그들이 즐겨 보는 촉감 영화 회사의 유명한 촬영기사 보나파르트는 존을 은밀히 촬영한다. 보나파르트가 제작한 이 영화는 엄청난 인기가 있었고 존이 숨어 사는 시골풍의 정적은 존을 구경하러 몰려드는 헬리콥터들에 의해 깨어진다. 이러한 소란 속에서 존은 “왜 나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습니까.”를 외친다. 광란의 시간에 지칠 대로 지친 존은 불현듯 생각난 듯 하느님을 부르며 등대 안으로 들어가 숨을 거둔다. 문명의 도시에도 야만인 보호구역에서도 이방인이었던 존은 그렇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수십 년 전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이 담긴 ‘멋진 신세계’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행복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