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행기
2019년 여름. 나는 콜롬비아에 똑-! 떨어졌다. 처음부터 중남미에서 공부하고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코로롱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최근 2년 간의 서러움을 달랠 방법은 과거의 여행을 다시 여행하는 것이다.
나의 중남미 여행기를 요약하자면 우선 7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 정도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한 학기 동안 대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11월 말 페루를 시작으로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1월쯤엔 미국 플로리다주를 짧게 여행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여행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이 글은 소설책이 될 테니 조금 자제해서 오늘은 가장 남미다운 남미 페루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1. 리마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비행기를 타고 늦은 저녁 페루 리마에 도착했고 미리 예약한 호스텔에서 친구 다빈을 만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다빈은 이미 나와 여러 번 해외여행을 함께 간 사이라 우리들의 페루 여행은 아직 겪지 않았었지만 재밌을 거란 기대감이 폴폴 풍겼다.
리마는 페루의 수도답게 큰 광장이 많았고, 엔틱한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도시였다. 저녁에 걸어갈 때 만난 식당들도 얼마나 예쁘던지. 이미 콜롬비아에서 남미에 적응했다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같은 언어를 쓰기에 문화까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착각.
2. 와카치나
그런 리마보다 우리가 훨씬 기대하던 지역은 오아시스가 있는 와카치나였다. 리마에서 4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이카라는 곳에 도착한다. 거기서 택시를 타 15분 정도 가면 와카치나에 도착하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지 택시 아저씨가 한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재밌고 푸근한 인상 덕에 Vamos!
강렬한 태양과 함께 맞이한 아침은 화-창 그 자체였다. 조식을 챙겨주는 훈훈한 숙소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바로 수영장에 풍덩. 수영하다가 돌아보면 온 세상은 사막의 갈색과 하늘의 파란색 그리고 야자수의 초록색뿐이었다. 늘 푸르른 자연만이 최고의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비어있는 자연이 더 신비한 자연으로 느껴졌다. 시원한 물에서 수영을 하며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꺄오! 이게 여행이지!!!"
다음날은 버기 투어. 먼저 트럭을 타고 질주하다가 만난 높은 사막 언덕에서 보드를 하나씩 받았다. 그 의미는 샌드 보딩을 할 시간이라는 것. 상상보다 길고 가파른 언덕에서 보드에 몸을 싣고 내려가는 순간 한 번 더 "꺄오! 이게 여행이지!!!"
3. 나스카
나스카는 메마른 땅 위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 나스카 라인을 보러 가기 위한 곳인데, 사실 우린 이곳을 갈지 말지 많은 고민을 했다. 와카치나에서 다시 리마로 돌아가 비행기를 타고 조금 더 편히 페루에서의 마지막 목적지 쿠스코로 갈지, 나스카를 갔다가 12시간 장기간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넘어갈지 선택을 해야 했다. 고민을 왜 하는지 모를 만큼 이럴 땐 "언제 여길 또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더 보는 것을 택하는 우리. 나스카는 식당도 많이 없는 아주 작은 도시인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하루 만에 나스카 라인을 구경하고 다른 목적지로 떠나는 곳이기도 하다.
커다랗고 메마른 대지 위, 외계인이 그렸는지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신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원숭이, 손, 나무, 새 등.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헛... 그런데 괜히 큰 비행기가 좋은 게 아니다. 역동적인 파일럿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큰 멀미를 했다. 솔직한 말로 이륙을 하고 첫 그림을 본 이후로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었다. 허허허. 그래도 흘낏흘낏 땅 아래를 보며 커다란 그림을 구경했다. 자! 이제 어서 나스카를 떠나 페루에서의 마지막 목적지 쿠스코로 가자!
4. 쿠스코
쿠스코는 페루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추픽추가 있기 때문. 나스카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쿠스코는 굉장한 역사가 느껴지는 큰 도시였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광장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곳의 광장도 참 멋있었다.
숙소마다 잘 마른 코카잎이 놓여있었다. 해발 3600m의 고산지대인 이곳에서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우리는 고산병의 무서움을 모른 채 이를 가볍게 무시했으나 그건 아주 큰 실수였다. 다음날 무지개산이라 불리는 비니쿤카를 갔다. 쿠스코 지역에서도 해발 5200m로 높은 지대에 있는 산은 정말 다섯 걸음만 걸어도 헥헥 큰 숨을 내쉬어야 할 만큼 힘들었다. 열심히 걸어서 가려했던 이전의 의지와는 달리 살기 위해 말을 탔다.
비니쿤카의 정상은 화창한 날씨 덕에 눈과 안개가 없어 무지개 빛깔이 아주 선명한 산이었다. 여행은 스펙터클할수록 기억에 남는 법. 몸이 가장 힘들었던 이 여행지는 지금 와서 보면 가장 재밌었던 곳 중 하나다.
TMI로 당시 함께 버스를 타고 비니쿤카를 갔던 한 아저씨는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의 교수 역할로 나오는 배우와 무척 닮았었다. 만약 만약 만약! 그 사람이 맞다면 그를 포함한 다른 투어 멤버들과 찍은 이 단체 사진은 아주 귀중한 사진이 될 것 같다.
쿠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내가 좋아했던 광장에서 눈에 보이는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나는 블랑코, 다빈은 띤또! 이제 마추픽추를 다녀오면 다빈은 한국을 돌아가고 난 계속해서 여행을 하기에 친구 다빈과는 마지막 쿠스코에서의 밤이었다.
5. 마추픽추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3시간, 기차를 타고 1시간 반, 버스로 20분을 가야 볼 수 있다. 과연 잉카 문명이 하늘 꼭대기에 숨겨뒀다고 말할만하다. 그렇치만 우리에겐 이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이미 긴 버스를 몇 번이나 타봤었고 난 남미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기에 무척 설렜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여행자들로 넘쳤다. 앞에 마주 보고 앉은 아주머니가 사진도 찍어주셨다. 여행자의 마음은 여행자가 잘 안다. 서로 사진도 마구마구 찍어주고 말이야.
고산지대라 비니쿤카처럼 추울 것이라 생각하고 아주 껴입고 갔는데 우리만 겨울옷이었다. 다들 가벼운 옷차림에 심지어 반팔까지. 여러분! 마추픽추는 생각보다 덥습니다. 마추픽추의 어느 공간이 무슨 용도였는지 가이드를 들으며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 둘만 다녔기 때문에 그렇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비함은 여전하다. 생각할수록 믿기지 않는 그런 곳이다. 마추픽추!
3일 정도 마추픽추와 그 주변 여러 유적지와 관광지를 둘러보고 쿠스코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 내가 먼저 예약한 에어비엔비 숙소에 내리고, 다빈은 택시를 타고 그대로 쿠스코 공항으로 갔다.
6. 다시, 쿠스코
이제 나는 콜롬비아에서 함께 지냈던 민주를 기다리며 쿠스코에서 약 2주를 혼자 보냈다. 바쁘게 지내기 보단 조금은 심심할만큼 휴식을 취하며 보낸 2주였는데, 그 이야기 그리고 다른 나라 여행기는 또 기회가 될 때 써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