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가 했던 말이 있다.
The biggest adventure you can take is to live the life of your dreams.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당신의 꿈을 따라 사는 삶이다.)
나이 마흔이면 슬슬 퇴사를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서장 또는 임원 자리를 꿰차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흔 중반에 새로운 분야의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재취업한다는 건 나에게 도전이라면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취업한 회사가 나의 dream job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1인 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찔러보고 있었으며 앞서간 선배들의 책과 영상을 진지하게 파고들던 때였다. 결국은 생활비가 부족으로 다시 일터로 일단 나와, 원하지 않던 모험을 감행하게 된 셈이다.
나의 부서장과 그 아래 팀장은 이 회사에 입사한지 5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척하면 척, 모든 흐름을 꿰고 있다. 나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만 아니었다면 그들처럼 척하면 척하는 자리에 있었겠지.
새로운 회사로 가서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내가 가진 퍼즐 조각이 1개도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맞을까 저기에 맞을까 맞춰 볼 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퍼즐이 하나 주어지면 기존에 갖고 있던 조각과 혹시나 맞을지 비교하며 내 그림의 일부를 생성해 나간다. 아무리 경력자라도 최소 4-6개월은 지나야 퍼즐의 수가 충분해지고, 전체 판이 보이고, 그 판에서 부족한 퍼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즉,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단계가 된다.
만약, 누군가의 추천으로 입사해서 이미 지인이 있거나, 기존에 몸담았던 회사와 같은 업계라면 출발이 상대적으로 더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 지난 10년간 쌓은 경력의 베이스는 IT회사이긴 하지만 이번에 마흔 중반의 나이로 새롭게 입사한 회사는 내가 기존에 단 한 번도 일해보지 않았던 생소한 산업이다. (같은 IT를 기반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그 제품이 적용되는 타깃 시장은 다양하다. 요즘은 금융도, 의학도, 법률도, 교육도 tech가 들어가지 않는 분야는 없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경력 10년 차 이상의 나이로 누군가 입사하면 Guru 같은 냄새를 풍겨도 아쉬울 텐데, 이 업계 1년만 있으면 누구나 알만한 쉬운 용어나 표현, 개념조차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이게 이 회사 내에서만 사용하는 약어인지 아니면 이 산업 전체에 통용되는 용어인지 알기 위해선 사내 컨플루언스와 구글링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런 용어에 대한 의문이라면 오히려 답을 찾아내기가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뭔가 제품에 대한 로우레벨 단의 로직과 관련된 거라면 이건 웹에서 해결이 어렵다. 휴먼에게 직접 물어야 한다. 질문을 한다는 건 내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어떤 회사든 그 회사가 사용하는 용어와 알아야 할 지식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특히나 나처럼 IT나 tech기반의 회사라면, 그리고 나처럼 마흔이 넘어서 새로운 곳에 입사한 경우라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즉, 제품에 대해서 이미 작성된 문서나 이메일등을 최대한 읽어보고,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도저히 모르겠을 때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내가 경력이 얼마인데' 당연히 이게 맞겠거니 하고 넘겨짚는 것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질문도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A가 B로 돼서 C가 D에게 E라는 영향을 주는 게 맞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 A, B, C, D, E를 제대로 내가 이해하고 있는지 자동으로 검증받게된다.
나를 내보이는 게 싫다면 이렇게 묻지 않고, "A가 왜 E한테 영향을 주나요?"라고 물어도 된다. 이러면 내 지식수준을 감춘 채 상대한테서 A부터 E까지의 설명을 얻어낼 수도 있다. 대신 내가 듣고 싶은 답을 얻기까지 오래 걸린다. 상대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다. 내가 얼마큼 아는지 상대는 전혀 가늠이 안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A가 무엇이지 정의부터 설명할 수도 있다.
지식노동자로서 내가 일하는 대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내가 필요한 정보만 제대로 얻어내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내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내 바닥을 먼저 까야한다.
물론 일한 기간이 누적돼서 그 상대와 내가 서로 티키타카가 여러 번 있었던 상태라면 완전히 이야기는 다르다. 아 하면 어 하고 서로 알아듣는다. 하지만 입사 처음이라면 특히 나처럼 경력이 매우 많아 보이는 경우라면, 오히려 '나는 아는 게 거의 없으니 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드로 가야 한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는 훨씬 어리지만 적어도 이 집단 안에서는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은 선배님들을 존중하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