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났다. 요즘의 관심사는 재테크다. 한참을 주식이며 부동산이며 떠들어댔다. 그래서 부동산이 오를 거냐, 첫 집은 언제 사야 되나, 어디가 좋다더라. 누가 어디에 등기를 쳤다더라, 배터리 산업은 어떻고, ETF며 ELS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지나서, 은퇴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다들 입사한 지 2~3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은퇴가 꿈이다. 재테크에 혈안이 되어 있고, 아파트를 보러 다니고 주식을 샀다가 팔았다가 하는 게 다 빠른 은퇴를 위해서다. 나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목표로 하는 금액이 있는데, 그만큼만 모아지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울 거다. 내 꿈은 회사에서 승진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고 퇴사하는 거다.
나는 퍽 게으른 편이라, 막내한테 일이 몰리고 위로 갈수록 놀고먹는 구조를 좋아한다. 그런 세상은 미래가 있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나도 조만간 슬렁슬렁 인터넷 신문이나 보다가 퇴근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질 않아서, 회사의 부장님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이놈의 회사는 올라갈수록 일도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진다. 욕도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지금도 이렇게 회사가 싫은데 이걸 잘 참고 견디면 상으로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니. 미래가 없다는 게 이런 거였다.
회사의 일이란 어쩐지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쉬지도 않고 일을 했는데, 막상 퇴근 때가 되면 뭘 했나 싶다.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중간중간 기억이 잘 안 난다. 자다 깬 것 마냥 어느새 눈을 떠 보면 아니 왜 벌써 5시가 됐고 6시가 됐냔 말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그렇다고 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세상이 이렇게 힘든 건, 이게 다 경쟁 때문이다. 우리는 저 옆에 있는 경쟁사를 이겨보겠다고 스스로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저 경쟁사에서 일하는 김 모 씨는 힘들지 않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바다 건너 다른 경쟁사에서 일하는 제임스 머시기도 아마 힘들 거다. 우리 회사에 납품을 하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나까무라 상도, 우리 물건을 받아다 쓰는 드미트리 씨도 힘들게 살고 있겠지. 경쟁의 고리는 끝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다. 우리는 우로보로스의 등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다.
4시간여를 떠들어댄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 무한한 경쟁의 고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야 말로 경제적 자유요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종착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고야 말았다. 아니 그런데 나는 솔직히 이 정도면 핸드폰 더 안 좋아져도 괜찮고, KTX 보다 더 빠른 기차도 필요 없는데, 굳이 더 좋은걸 만들겠다고 다 같이 으쌰으쌰 할 필요가 있을까! 기술은 이제 충분히 발전한 것 같은데 다 같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경쟁의 총부리를 내려놓고 천천히 가면 안될까. 회사들을 다 합치고 방만하게 경영하면서 2년에 한 번씩 액정 모양이나 조금 바꾼 그런 핸드폰을 만들어 팔면 안 되는 걸까. 그럼 다 같이 편안하고 좋지 않을까. 아, 그렇구나! 이래서 공산주의가 발명됐구나! 혁명! 결코,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