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동서양을 비교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동서양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자기소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TV 속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 소속과 출신지, 가족관계 같은 것들을 읊었다. 반면에 서양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같은 이야기들을 했다.
내가 봤던 방송에서는 동양인의 자기소개를 관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것도 맞는 말일 거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단지 될 수 있으면 튀지 않고, 나의 색을 드러내지 않고 가능하면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방향으로 말을 하는 버릇이 생긴 게 아닐까. 그래서 무난하고, 나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대답을 내놓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지만, 나는 이게 영 재미없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나를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때 나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었는지 같은 것들을 관찰하다 보면, 생각보다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곤 한다. 내 모든 성격과 버릇들은 장점이면서 단점이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자 여기에 머물게 하는 한계다. 그런 점들이 재밌다.
그래서 그간 했던 생각들을 모아 익명의 힘을 빌어 자기소개를 해보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굉장히 이중적이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기는 어렵다. 나는 겁쟁이지만 용감하고, 침착하면서 경솔하다. 그래서 이야기로 나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마 조금 길어질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은 '조금 긴 자기소개'다. 이건 그러니까, 나에 대한 정밀묘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