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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쉐이크 Feb 21. 2022

똑같은 옷만 입는다

 19년에 입사를 했으니 벌써 회사에 다닌 지 만 3년이 됐다. 입사를 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중 하나는 똑같은 무지 티셔츠 10벌을 산 거였다. 한 벌에 4천 얼마쯤을 줬으니까, 10벌이라고 해봐야 5만 원이 채 안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3년 동안 같은 옷을 입고 출근했다. 위는 반팔 면티에 청바지. 사무실이 추울 때는 위에 셔츠나 카디건을 입고, 아니면 반팔인 채다. 아무래도 오래 입다 보니 색도 빠지고 낡기도 해서 중간에 한두 번 옷을 교체했는데, 같은 디자인 (디자인이라고 할 것도 없다)을 다시 샀다. 물론 아무도 새 옷인 건 눈치 못 챘다.


 옷이 몇 벌 안되니까 출근에 입을 옷은 침대 및 서랍장에 다 들어간다. 그래서 아침 동선이 편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서 안방에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침대 밑에 있는 옷을 꺼내 입는다. 고민할 것도 없고, 짐도 적다. 안 입은 셔츠가 몇 벌 남았는지만 보고 빨래 주기를 정하면 되니까 재고관리도 편하고, 어쩌다 한두 벌을 버리게 돼도 똑같은 옷을 사서 채워놓으면 돼서 편리하다. 편한 것투성이다.


 필요한 건 약간의 뻔뻔함과 뺀질거림이다. 같은 옷을 돌려 입은 지 오래되다 보니 회사 사람들이 가끔 놀릴 때가 있다. 이땐 뻔뻔하게 웃어 넘 거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항상 옷이 같은 게 애매하게 옷 몇  벌을 돌려 입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똑같은 옷만 입으면 뭔가 생각이 있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택에 들이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잡스가 이렇게 한대요 같은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게으를 뿐이지 깊은 신념이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니까. 그냥 슬쩍 웃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된다.


 처음 이렇게 해보려고 생각을 하게 된 건 스티브 잡스가 매번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걸 알게 됐을 때였다. 잡스의 의도가 뭐였든 간에, 나한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같은 옷을 여러 벌 산다니, 너무 편하겠다!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던 생각을 실현할 때가 됐다. 입사는 했는데, 그동안 살이 쪄서 옷들이 맞지 않았던 것. 이참에 생각만 하던 걸 실현해 보기로 했고, 지금은 몹시 만족스럽다.


 딴 얘긴데, 양말도 같은걸 여러 벌 사면 정말 편하다. 구멍이 나면 한 짝씩 바꾸면 돼서 효율적이기도 하고, 빨래를 하고 나서 짝을 맞출 필요도 없다. 개꿀.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를 목표로 하게 됐다. 원래 나는 집에 짐이 많은걸 싫어하는 편이긴 했는데 지향하는 바가 미니멀한 생활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보니 좀 더 바라는 모습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물론 물건을 많이 줄이지는 못했고, 더 이상 늘리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 미니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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