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이제는 유명해진 선언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짧은 책입니다. 시집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책자에, 70여 페이지 가량이니 에세이 한 편 정도 분량입니다 (책은 128페이지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뒷부분은 ‘우울 사회’와 ‘역자 후기’입니다). 2010년 독일에서 먼저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2012년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책의 첫 문장처럼 저자는 시대적 특징을 질병에 빚댑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이전까지의 사회는 면역학적 사회였습니다. 외부에서 침투한 박테리아를 체내에서 공격하여 말소하듯이 이질적 타자를 배척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정신증적 사회입니다. 이는 외부의 이질성이 단순히 다름으로 치부되어 문제시되지 않는 사회입니다. 오히려 내부적인 과잉, 특히 긍정의 과잉이 병을 일으키는 사회입니다.
또한 21세기 사회는 규율 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습니다. 성과사회의 긍정 과잉은 무엇이든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를 만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느낄 때 절망과 우울을 겪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 과잉은 다시 활동 과잉을 낳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활동 과잉적 상태는 사색을 멈추게 만들어 오히려 수동적인 상태를 만듭니다. 저자는 이를 일종의 정신적 탈진상태로 보고,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잉에 파묻혀서 마비되고 질식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의 중후반에 있는 사색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습니다. 저자는 니체를 인용합니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색하는 삶은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며, 쉬어가는 시간이면서도 오히려 활동적인 삶입니다. 활동 과잉 상태의 현대인은 그러니까, 운동량에 저항할 새도 없이 관성에 의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확실히 피로한 사회입니다. 책의 저자와 같은 의미의 피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사회적인 피로에 대한 인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위치는 한창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결국 개인의 문제다’와 요즘의 ‘모든 게 사회 탓이다’를 양 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의 중간 어디쯤인 것 같습니다. 다만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중립 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양분에 무감각한 중립에 가깝습니다.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만, 몇 가지 저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시대의 질병과 착취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을 여는 첫 문장은 정말이지 강렬했습니다. 인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굳이 왜 병리학적인 것을 사회와 연결 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느껴져요. 그저 닮았다는 정도밖에는요. 제가 오독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설사 정당한 짜임새라고 하더라도 이런 비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착취에 대한 담론은 좀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결국 생산성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과사회의 성과 주체는 자율적인 객체입니다. 스스로 동기를 유발하며 자신을 착취합니다. 그래서 규율 사회의 기계적인 복종적 주체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입니다(p.25). 저는 이게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개인의 자기 착취는 저자의 생각처럼 정신증적 사회의 긍정 과잉으로 인한 결과라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에 적응한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입니다. 요컨대 경쟁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아야 했고, 이를 위해서 자기 착취적인 인간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그런 개체만 살아남았다는 진화론적인 관점을 끌어와도 좋습니다. 아무튼, 그러므로 제가 보기에는 긍정 과잉의 신경증적 사회의 형성은 자기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인류의 집단적 정신적 방어기제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긍정 과잉이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는 책의 내용은 제가 볼 때 인과관계가 반대로 되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개인의 자기 착취의 원인은 사회의 자유시장경제 원리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가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순간, 사회는 성과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과사회에 의해 자기 착취가 이루어지는 대상은 개인뿐만이 아닙니다. 기업과 국가도 스스로를 착취합니다. 그러므로 기업은 기업을 구성하는 세포인 개인을 착취합니다. 효율과 혁신을 이유로 개인을 통제하고 관리합니다. 국가는 제도적으로 경쟁을 장려합니다. 그러므로 국가를 이루는 기업과 개인은 스스로를 착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착취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 과잉에 빠져 스스로를 착취에 내몰고 있는 21세기의 사람뿐 아니라 아직 규율 사회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예컨대 발전할 것 없는 단순 노동을 하며 여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마저 착취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이 시스템에는 지배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점에 매우 동의합니다. 제 생각에 시스템 자체가 지배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그 ‘시스템’이란 자유시장경제 체제입니다 (올바른 용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는 경쟁사회를 낳고, 경쟁사회는 필연적으로 성과사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성과사회 속에서의 정신적 방어기제로 긍정 과잉과 생각을 그만두려는 행동과잉이 나타나는 것 같아 보여요. 그러니까 제가 볼 때 우리는 시스템의 존속을 위해서 착취당하는 셈입니다.
#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었습니다만, 단어나 문장이 눈에 익지 않아서 읽기가 약간 버거웠습니다. 특허 명세서를 처음 읽었을 때 느낌 같았어요. 그래서 오해한 부분도 많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량이 적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