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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콩쉐이크 Sep 30. 2018

류츠신, <삼체>

중국의 SF 소설입니다. 휴고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총 3부작의 긴 소설인데, 국내에는 2부까지만 번역되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1, 2부 출판의 텀이 좀 깁니다. 이 속도라면 3부가 나오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요. 사실 국내에서는 내용보다도 표지로 유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표지가 바뀌어서 좀 나아졌습니다만, 이전 버전 표지는 상당히 난해했었어요.


왼쪽부터 삼체 중국 표지, 한국 구/신 표지


SF소설을 좋아하지만, 깊은 교양이 있는 건 아니라서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이 많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장르문학은 골수팬이 많고, 깊이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뭔가 적기가 껄끄럽네요. 심지어 책을 본 지 좀 돼서 내용도 가물가물합니다.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그린 소설입니다. 중국의 한 연구원이 외계인과 통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인류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태양을 통해 전자기파를 증폭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인류의 멸망을 바라며 지구의 좌표를 우주로 쏘아 보냅니다. 신호를 받은 외계 문명은 우리보다 훨씬 발달했지만, 사실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구는 모행성을 떠나 정착할 수 있는 좋은 대안입니다. 이제 외계인의 침략이 예정되었고, 인류는 이를 대비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문화 대혁명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외계인과 인류의 심리학적 차이, 몇 가지 그럴듯한 과학적 설정들이 양념처럼 곁들여집니다. 그렇지만 큰 줄기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려고 한다는 단순한 소설이에요.


15년쯤 전에 '피라미드'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찾아보니 출판 연도가 1999년입니다). 피라미드가 사실 우주선이었고, 이걸 이용해서였는지 그 피라미드에 대항해서였는지 여하튼 외계인들의 침략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좀 올드한 느낌이에요 (그게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그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거든요). 


문체는 상당히 건조하고, 장르는 굳이 나눠 보자면 하드 SF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과학적 이론이나 배경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데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그 자체가 소설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또, 제임스 P. 호건이 쓴 ‘별의 계승자’ 에서처럼 주인공이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제법 볼만 합니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그려진 외계인의 모습도, 미래 인류의 모습은 어딘지 좀 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소설 속에서 괜히 우주 거미니 우주 장미니 하면서 이름 앞에 우주를 붙이면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 튀어나오는 걸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이게 문체나 소설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묘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7,80년대 SF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이건 개인적인 편견입니다만, SF소설은 마지막에 무언가 탁 치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초등학교 때 읽었던 키릴 불리체프의 ‘내가 당신들을 처음 발견했다’라든가, H.G. 웰스의 ‘우주전쟁’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론에 근거한 반전은 SF소설의 필수요소는 아니겠지만, 일종의 밈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서사가 중심이 되는 장편 SF소설은 그다지 즐기지 않습니다. 소설 삼체에도 유사한 장치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제목이 좀 스포일러성이 짙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보다는 오히려 흡입력 있는 소설입니다. SF보다는 소설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드 SF를 표방하는 듯한 작품이면서 왜 만화 같은 설정들을 끼워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삼체 게임’이 그래요. 시대 배경에 맞지도 않는 것 같은 기술이고,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였긴 했지만 어딘지 분위기를 깨는 듯한 데가 있어요. 아마도 비유였겠습니다만, 외계인의 ‘탈수’ 개념이나 컴퓨터 제작 같은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의 분위기와 좀 안 맞는다고 생각해요. 제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싫은 점입니다.


% 아이작 아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등장하는 심리 역사학이나 H.G. 웰스 ‘타임머신’에서 등장했던 먼 미래의 인류 같은 것들은 거부감이 없었던걸 보면, 단순히 말이 안 되는 설정들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를 깨버리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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