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는 쉽게 쉬지 못한다

by 페어

장녀는 쉽게 쉬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쉬어도 되는 상태를 좀처럼 즐기지 못한다. 또다시 놀게 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나 혼자 바쁜 듯 분주한 기분이 든다.


오전 7-8시가 되면 가족들이 출근 준비를 하는 지금 나만 이렇게 누워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는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해서 가족들이 출근할 때까지 그냥 방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시야에 있지 않는 것이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는 가족들에게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출근을 하면, 집안은 조용해진다. 그때 나는 방 안에서 나온다. 같은 백수 처지인 막냇동생은 밤낮이 바뀌어 오후에 일어나기에 나는 집에 혼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침을 챙겨 먹고, 아침 뉴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설거지도 하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이래저래 내가 할 일을 얼추 다하게 되면 오전 11시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부터 나는 오늘 뭐 하지?를 생각한다.


가족들 누군가가 집안일을 부탁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나는 집안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집에서나마 쓰임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집안일을 하고 잠시 쉴 때에도 머릿속은 계속 돌아간다. 다음에 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거나, 가족들은 직장에서 잘하고 있으려나 하는 걱정도 잠시 하고, 휴지며 세탁세제는 얼마나 남았나 체크하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어떤 요리로 소진할까 생각하기도 한다.


장녀는 잘 놀지 못한다. 고 있는 와중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역할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노는 중간에도 생산성을 떠올리고, 쉬면서도 이게 휴식인지 낭비인지 계산해 본다. 그래서 놀면서도 개운하지 않았다. 이번 겨울, 나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이번에 내가 집에만 있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렇다 할 버킷리스트도 꾸리지 않았다. 웹툰도 잘 안 보고, 영화도 별로 안 좋아하고, 게임도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여행도 즐기지 않는 나는 뭔가 하고 싶은 것들조차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한다고 하기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의 휴식이 어떤 모습인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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