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이란 '누가 옳은가'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다
당신은 토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토론이라 하면 ‘100분 토론’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 주장의 근거를 가져와서 상대에게 폭격하고, 상대방의 근거는 모조리 비논리, 억측, 떼쓰기로 상정하여 비난한다.
최재천 교수는 이미 토론이라는 단어에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를 전제하며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대화라는 사회적 맥락이 형성되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의견 교환과 합의의 과정에 대해 ‘숙론’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숙론이란 ‘누가 옳은가’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다. 최재천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숙론에도 규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나의 이익만을 내세운다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결국 갈등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자 간 이익의 충돌로 발생하는 것이고, 한쪽의 입장을 묵살하는 것은 결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숙론은 이상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숙론을 통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낸 사례를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남아공의 몽플레 프로젝트이다.
남아공은 백인 세력이 나라를 휘어잡고 인종 차별을 감행하다가, 1990년 처음으로 흑인 정당을 인정하며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이 극심해졌다. 이때 남아공은 흑/백인 정치인 등 대립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소집하여 함께 미래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목적은 ‘어떤 세력의 승리’가 아니라 ‘성공적인 민주주의 도입과 지속 성장의 기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논의는 [원하는 것이 아닌, 일어날 수 있는 일만 말하라]는 규칙을 기반으로 진행됐고, 결국 넬슨 만델라의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취임과 그의 인종 간 협조 정책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이렇게 숙론은 분명 실현 가능한 영역에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재천 교수는 성공적인 숙론을 위해 진행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숙론 진행자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경청할 줄 알아야 하며, 숙론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즉,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교수가 자신의 책에 사인할 때마다 적는 문장이다. 세대 갈등, 성별 갈등, 계층 갈등, 더 좁게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 모두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일상에서부터 ‘숙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싸워서 이겨먹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토의를 일상에서부터 경험하고 훈련한다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본인의 가정/학교/직장에서부터 ‘숙론’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