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는 중

움직일 동(動)

by 왕배

나는 남자이기에 아이를 몸 안에 품지 못한다. 마치 신생아가 세상을 바라보듯, 느낄 수 없으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아내는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직후부터 아이를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콕콕 찌르는 느낌이 아이를 상기시킨다. 아직은 겉으로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내 몸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한 것을 상상하면 괜히 설레고 또 조심스러워진다고 한다.


남자는 임신 중기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아기를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 병원에서 임신 초기 거의 매주 촬영하는 초음파 영상을 통해서나 아기를 간접적으로 느낌 따름이다. 특히나 임신 7주차까지는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동그란 모습만 볼 수 있다. 아주 작은 반지 모양의 무언가가 깜빡거릴 뿐인데, 그 마저도 의사 선생님이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으면 직관적으로 와닿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다 임신 8-9주차가 되면 벌써 동물의 형체를 띄게 된다. 흔히들 젤리곰이라고 부르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인데 내가 본 우리 아기의 모습은 약간 곤충 같기도 했다. 아직 온전히 형성되지 않은 팔과 다리는 뾰족한 막대기 같았고, 표주박 같은 몸통에 붙어 있었다. (참고로 아내는 약간 삼계탕 속 닭 같다고도 했다) 그리고 기어가는 모습처럼 팔과 다리, 온몸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제야 나는 아기라는 생명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아내는 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입덧이 찾아온 지는 좀 됐고 이제는 그 정도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보면 흔히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꽤나 명료하게 구분되어 그에 맞게 영양을 챙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아내의 입덧은 종잡을 수 없었다. 바로 전날 먹고 싶어 했고, 잘 먹었던 음식이 다음날에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는 것이 되어 있었다. 입덧으로 인해 아내는 음식 섭취량도 많이 줄었고, 영양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식단이었던 탓인지 중간에는 몸무게가 줄기도 했다.


아무튼 이러한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온도의 차이는 아내의 불만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마음의 준비를 더 했다면 좋았을까? 타고나길 더 다정한 성격이었다면 달랐을까? 때때로 아내를 서운하게 해 한 소리를 들을 때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실제로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철부지 예비 아빠이기는 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큰 관심도 없고 어찌 보면 남 일처럼 멀게만 느꼈다. 하필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대유행이었다.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은 완벽하게 다정하고 준비성 있는 남편이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싶었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나는 또다시 회피했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시간이 해결해주기는 했다.


어느덧 임신 15주, 보통 초산 엄마는 태동을 거의 18주가 지나야 느낀다고 하는데 내 아내는 15주부터 태동을 느꼈다. 분명 장의 꼬륵거림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혹시 나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내의 아랫배에 귀를 가져다 대었다. '이 소리인가!?' 할 때마다 아내는 '그건 내 장소리야'라고 했다. 이때까지는 여전히 내가 아기를 직접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첫 태동이 빨라서일까? 임신 9주 차 초음파 촬영 때부터 꼬물꼬물 활발히 움직여서일까? 임신 18주 차부터는 아이의 태동이 엄청 활발해져서는 아내의 뱃가죽을 뚫고 그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아기를 느꼈다. 내 두 눈으로 아내의 아랫배의 아주 좁은 부분이 아주 빠르게 불쑥 솟아올랐다가 내려가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곳에 손을 대보았는데, 내 손을 때리는 아기의 발길질 혹은 주먹질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부터 아기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 눈으로, 내 손으로 보고 만진 나의 아기가 더욱 소중해졌고, 행복한 아기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자연스레 태담도 시작하게 됐다. 아내의 아랫배에 손을 올린 채 태담을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가만히 있던 아기가 쿠당탕 몸짓을 한다. 나는 더욱 신나서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꼭 태담책이 아니더라도 일상 얘기를 하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도 던진다.


한자 '움직일 동'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육체의 움직임, 다른 하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아기의 몸짓이 나의 마음이 움직였고, 이로 인해 나의 행동이 달라졌다. 이제는 정말로 나의 아기를 느끼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기한테도 인사를 건넨다. 자기 전에도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태아가 아기가 되기 위해 엄마 배속에서 성장하고 있듯, 나도 아빠가 되기 위해 엄마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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