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부조리에 대하여
당신은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가족 친지, 학교 동기, 직장 동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다양한 소수자 이슈가 중구난방 대두되는 현대사회이니만큼 '채식주의'라는 신념이 낯설지는 않겠지만, 묘한 불편감을 느끼는 것도 꽤나 보편적일 것이다.
나 또한 채식주의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 신념에 대해 낯설게 느끼지는 않지만 때로는 막연한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다. 무례함을 숨기지 않는 누군가는 '유난'이라던지, '잘못'됐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지나치게 문명화, 사회화되어 지난 수 천 년의 역사 동안 썼다 지우고, 추가하고 변경해 온 '상식'이라는 틀을 무방비하게 장착하여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방금 말한 무례함을 숨기지 않는 사람은 본인이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인식도 없이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꺼낼 것이다.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는 사실 채식주의 그 자체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책이 출간된 2005년의 시대상을 되돌아보면 채식주의자가 받은 취급이 지금보다도 더 유난스럽고 폭력적이었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채식주의는 '비상식'의 대표 격으로서 나타날 뿐이고, 그 본질에는 사람들이 만들어온 '상식', '문명', 혹은 '사회'라는 거대한 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3개의 연작 소설 중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고,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처제와의 불륜은 가장 대표적인 막장 드라마 소재로 여러 불륜의 종류 중 사람들에게 가장 큰 부조리감을 준다. 형부의 예술을 빙자한 성 포르노 제작과 그에 별 거리낌 없이 출연하는 영혜의 모습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극렬히 터부시 되는 성에 대한 불편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는 이런 부조리감을 최대한으로 주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고 느낀다. 여러 장치나 묘사들이 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영혜와 형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형부는 본인과 영혜의 몸에 꽃을 그렸고, 가장 큰 꽃은 성기를 중심으로 그려서 성기가 마치 꽃술이 된 것처럼 연출한다. 우리는 흔히 성욕에 지배된 사람을 짐승, 동물 등 사람 이하의 것이라고 비유하고는 한다. 그리고 영혜와 형부는 가장 동물적인 행위를 식물의 모습을 한 채 보여준다.
이런 부조리 속에서 작가는 묻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불편함과 당혹감. 불쾌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문명이라는 포장지를 벗기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고, 이들에게 성욕 같은 것은 자연스러운 생의 섭리와도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정답은 없다. 다만, 지금 사람들은 절대다수의 취향을 정리한 '상식'이라는 해답을 만들어내어 따르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도 그 '상식'이라는 대법전을 머릿속에 펼쳐 보았을 때, 영혜와 형부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설명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리라.
이 지점에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채식주의는 2005년에도, 그리고 지금 시대에도 '상식' 법전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 형부와 처제 간의 불륜은 나아가서 '비상식'이라는 별책에 잘 정의되어 있다. 성 포르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무방비하게 받아들인 '상식'이라는 틀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정의로우며 타당하고, 합리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패망했기에 자본주의가 찬양받듯, 소련이 패망했기에 미국이 찬양받듯,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적힌다. 지금 우리가 따르는 '상식'이라는 것 또한 절대다수이기에 언제나 승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어 왔다.
작가는 마지막 '나무 불꽃' 단편을 통해 본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드러낸다. 우리가 '상식' 그리고 '문명' 따위의 명분으로 휘두르는 폭력을 경계하며, 나아가서는 동물이기에 행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폭력을 거부하며 영혜는 나무가 되고자 한다. 식물은 평화롭다. 물론 자연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식물 또한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살아나갈 것이다. 하지만 동물의 그것과는 분명 다르다. 적어도 다른 생명을 직접적으로 해하지는 않는다. 식물의 생존 방식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존재함만으로 필연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에 대한 많은 성찰과 고민을 했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쪽, 흔들리는 나뭇잎을 마치 불꽃같다고 묘사하는 것은, 계속해왔던 말처럼 가장 정적이고 수동적일 것 같은 식물에게서 활력, 에너지를 상징하는 불꽃을 본 것이기도 하며, 식물적인 삶에서 보통은 떠올리지 못하는 생명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두 다리로 걷는 것,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숨 쉬는 것.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의 '상식'에 동의한다기보다는 무비판적이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수자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폭력의 대상은 언제나 소수이고 우리의 대부분은 다수이다. 그렇기에 대다수에게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유리한 '상식'이 많다. 이런 상황 속에서, <채식주의자>는 내가 숨 쉬 듯 당연하게 생각해 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