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삶과 죽음의 당위

by 왕배

그대는 왜 사는가?


내가 한창 학생이던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 "너의 삶의 살아라" 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난무하던 시절. 시키는 것만 잘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주체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그 때.


나 또한 내 삶의 당위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내 인생에 제법 큰 굴곡을 만든 사건들을 나름대로의 당위와 신념에 맞게 선택하고 맞이했다. 그럼 현재의 나는 15년 전 내가 고민하고 노력하여 10년 전의 내가 선택한 의도에 맞게 살고 있는가? 잘은 모르겠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가. 나의 신념 또한 많은 부분 수정되었고, 지금의 나는 삶의 당위를 그다지 찾고 있지는 않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죽음은 이별이기에, 언제나 아쉽고 안타까우며 슬플 따름이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던 과거, 죽음은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가는 출발선에 선 것이며 악한 자는 지옥, 선한 자는 천국에 간다고 믿었던 때.


그 때 죽음의 당위는 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 왜 신은 하필 그날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던 5명을 선택했는가? 종교인들이 열심히 이야기를 각색하여 신의 뜻으로 끼워 맞추었지만, 사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어떠한 의미와 의도도 갖지 않는다. 우연히 태어나 우연히 죽는 것. 그것은 생물의 영역으로 사람이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오로지 인간만이 기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역사와 감정. 그것에는 의미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작가가 그 중에서도 강조한 '사랑'의 감정. 그것은 이전 <작별하지 않는다> 에서도 말했듯 중력보다도 강력하게 너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기에 이렇게나 강조한 것은 아닐까.


너의 죽음이 나에게로. 나의 죽음이 당신에게로.


사랑으로 이어진 기억의 실타래 속에서 모든 인간은 생물의 한계를 뛰어넘어 의미를 가지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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