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제가 사교육을 받던 1990년대에는 예체능과 다양한 활동들이 중요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수양을 위해 서예도 유행을 하였고, 발레나 피아노 같은 취미를 위한 예체능도 하나씩 하였습니다. 폭넓은 독서를 위해 도서관도 자주 방문하였고, 전집이 유행하였습니다. 2000년에는 삼국지와 그리스로마신화가 유행하여 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인물 파악은 되어있어야만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중반에 넘어가면서 점차 교육은 '국영수'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치뤄지는 시험에서 백 점을 받는 것에만 오롯이 맞춰진 교육으로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내신 성적만을 강조하는 교육트렌드로 바뀌면서 학생이던 저는 걱징이 되었습니다. 단지 '국영수'시험만 잘 치뤄내도록 교육 받으면 어떤 성향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지 하고 말입니다. 그런 걱정도 잠시, 어느덧 20년이 흘러 저는 학원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은 치열한 경쟁사회입니다.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외쳤듯, 우리는 옆 친구를 이겨서 등수를 올리는 싸움에 급급한 삶을 살아가도록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등이 되지 않는다면 노력에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일에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직 1등만 사랑받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노력도 해보기 전에 미리 패배감을 느끼고 도전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지 않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삶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완벽한 비율의 외모를 가질 수도 없고, 마르지 않는 부를 가진 부모 밑에서 성장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높은 지능으로 태어나지도,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모습대로,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뿐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숭고하고 고귀하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영어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모두, 완벽을 추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수없이 완벽한 문장을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말을 하지 않거나 글을 적기를 꺼려하였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법과 단어를 완벽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고 적어보는 것이 중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영어"를 위해 아이들은 오히려 영어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영어 실력 향상을 시키기 위해 꼭 이해시키고 넘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가치있다는 말입니다.
삶은 오늘을 맨정신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등을 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보람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서가 말을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순간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이서가 건강하게 내 옆에서 성장기를 보내는 그 자체가 제게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말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첫 만남의 감동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서적 학대를 하기도 합니다. 오늘 시험에서 백 점을 받고, 대회에서 1등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필요한 건,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아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모든 교육에는 기본이 있습니다. 기본인 마음이 되어야 응용인 공부 등 다음 단계를 나아갈 수 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마음이 충분한 아이로 키워 나가야만 합니다. 아이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건, 결국 아이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