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야 해!
정신만 바짝 차리면 우린 금방 벗어날 수 있어.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저 일상적인 하루일 뿐이었는데 갑자기 발 밑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캄캄한 암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대체 여기는 어디지? 조금씩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주위로 알 수 없는 가루가 날아올랐다. 콜록콜록 재채기를 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어 만져보았다.
"아앗!"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손끝이 따끔해졌다. 손가락 위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다친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이 정도 피는 금세 그칠거다.
나는 좀전까지 백화점의 의류매장에서 옷을 고르는 중이었던 것 같다.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숙해진다. 사방이 엉망이다. 팔과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여본다. 다행히 어딘가에 깔리지는 않은 것 같다.
' 아까 들렸던 목소리는 뭐지?' 소리를 내려 노력해 본다. 목이 건조하게 갈라져 따끔거린다.
"아아~ 여기도 사람 있어요. 누구 다른 사람 있어요?"
내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려퍼진다. 처음에 들었다고 생각한 목소리는 내 착각이었던가. 그 말처럼 정신을 차려야겠다.
몇 층까지 떨어진 걸까. 사고가 나기 전에 내가 있었던 곳은 3층이었다. 여기가 지상이긴 한가? 아주 먼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무려 23세기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싱크홀이라도 생긴걸까. 그제야 내가 바디수트를 안에 입고 있었음이 생각났다.
"안녕 시리."
"네 말씀하세요."
"나 어디 부러진데는 없는거지? 못 움직일만큼 다친 곳이 있는지 체크해 줘."
"현재 몸상태 양호합니다."
"그럼 주변에 생체신호가 잡히는 지 측정해 줘."
"사람의 생체신호는 없습니다."
"여기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나? 출구도 찾을 수 있는지 삼각측량 해줘."
"지금 현재 위치 지하2층, 엘리베이터는 고장, 계단도 무너진 돌덩이들로 퍠쇄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가야 하지?"
"구조요청을 보낼까요?"
"구조요청 보내 줘."
"긴급연락처 및 119구조대로 조난 및 구조요청 신호 전송합니다."
"바디수트에 신체 보호모드 실행해 줘."
"네. 신체 보호모드 현재 1단계로 자동설정되었습니다. 단계를 올릴까요?"
"3단계로 올려서 설정해 줘."
"네 알겠습니다."
부웅~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고 수트가 확장되어 손끝과 발끝, 머리까지 빼놓지 않고 감싼다. 이제 움직일 수 있겠다. 몸을 일으켜 본다. 비명소리가 저절로 난다. 온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것만 같다.
바디수트를 의지하니 드디어 일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눈 앞이 캄캄해서 발을 내딛기가 무섭다.
"Ok 구글!"
"루모스!"
손전등이 켜진다. 손전등을 의지하여 서 있는 자리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사방이 어둡지만 저쪽 어딘가에 빛이 보이는 것 같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빛이 나오는 곳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빛이라고 생각했던 건 자그마한 거울이었다. 거울이 손전등 불빛을 반사했던 것인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위를 쳐다보니 맨홀처럼 생긴 뚜껑 사이로 빛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그 후로 모든 것이 빠르게 전개되었다. 시리를 통해 맨홀이 있다는 정보를 구조기관으로 보냈고, 나는 무사히 구조되어 병원에서 상태를 체크하고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다.
퇴원하는 날까지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한 건 그 때 그 목소리였다. 정신을 잃고 있던 나를 깨어나게 했던 목소리. 과연 그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아마 그대로 더 정신을 잃고 있었다면 나는 무사히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딘가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다면, 끝없는 어둠 속에서 절망감에 빠져 끝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23세기에는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 기술적으로 너무나 발달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노화도 죽음도 기술로 커버가 가능한 시대다.
그 목소리! 그건 분명 기계음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부터 그 목소리에 대해 연구해 볼 생각이다. 언젠가 그 기원을 찾게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처음 경험한 목소리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다. 혹시 내가 그 목소리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뒤이어 누군가 그 목소리를 찾아주길 바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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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케이 #목소리 #근미래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