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하게 지하철에서 내린 뒤 출구를 향해 올라갔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잠시 휴대폰을 보느라 서 있었는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앞으로 가방을 멘 채로 나에게 온몸을 부딪쳤다. 못 봤던 건지 피해 갈 생각이 없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몹시 당황하고 기분도 나빴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에?
-왜 와서 사람을 치고 부딪치시냐고요.
-....
-보고 다니셔야죠.
말을 하고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에 가기 전에 할인마트에 갈 생각이었다. 지하철 역에서 걸어서 10~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가끔 가는 가성비 좋은 할인마트가 있었다.
한참 걸어가서 드디어 마트가 한 블록 정도 남았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와 내 앞을 막았다. 아까 그 남자였다. '뭐지..?'라고 생각한 것과 동시에 그 남자가 주먹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을 급하게 피했다. 턱 쪽으로 날린 주먹이었는데 피해서 다행히 턱 끝에만 살짝 빗맞았다. 너무 황당했다. 나를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10분을 넘게 따라왔던 거다. 순간 겁도 나고 어이도 없었기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뭐하시는 거예요? 저를 지금까지 따라와서 사람을 폭행하는 거예요? 지금 경찰 부를 거니까 딱 가만히 있어요.
휴대폰을 들어 112를 누르고 발신 버튼을 누르려하니 그 남자는 도망을 가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고 기분이 불쾌했다. 게다가 엄청나게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 아닌가.
강남역 사건이 일어난 지 채 몇 개월이 안 되었을 무렵이었고, 나는 몇 달 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길거리를 다니며 별별 험악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내가 잘 보고 다니라고 했다고. 조심하라고 한 게 기분이 나빠서 날 따라와 폭행하려 한 것 같았다. 경찰을 부른다는 소리에 놀라서 도망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찌할까 하다가 일단 할인마트로 갔다.
사람이 많고 밝고 환한 곳에 도착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와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혹시 그 남자가 또 따라오진 않을까 싶었다.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주위를 살피며 자취방의 열쇠를 꼭 쥐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열쇠 끝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도록 쥐고는 누군가 달려들면 열쇠 끝으로 일단 눈이라도 찌르고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무사히 도착해서 들어가고 나서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동생한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역시나 황당해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혼자서 혹은 여자들끼리만 사는 경우 말 못 할 두려움이 엄청나다. 현관에 일부러 남자 신발을 한 켤레 이상 가져다 놓기도 한다.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대한민국을 이야기하지만, 여성의 안전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 후진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밤늦게 돌아다닌 내 잘못이 아니라 따라와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문제다. 항상 사건이 터지면 가해자의 잘못 보다 피해자의 어떠함이 주목되는 것이 불편하다. 어느 누구에게나 안전한 나라가 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