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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Sep 06. 2021

Just 댄스

댄스에 진심


-아아. 안내드립니다. 젊은 선생님들께서는 방과후 4시 30분까지 시청각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일단 시청각실로 갔다. 여러 선생님들이 어리둥절한 채로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다들 궁금해 하던 와중에 예체능부장님이 도착하셨다.


-모여주셔서 감사해요 샘들. 부탁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아이들 축제가 있는데, 젊은 샘들께서 춤을 준비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예에??


   다들 화들짝 놀라는 것과 동시에 다시 예체능 부장님이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선생님들을 가르쳐주실 댄스강사님이십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이 시간에 연습해주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잘 가르쳐 드릴테니까 겁내지 마시고 따라하시면 충분히 다 하실 수 있어요.


   그렇게 축제날의 서프라이즈 무대를 위한 선생님들의 비밀 춤 연습이 시작되었다. 곡은 아시아를 휩쓸고 미국까지 진출한 원더걸스의 "Like this"였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선생님이라고 하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일 거라고 오해받을 때가 많다. 그러나 누구보다 댄스에 진심인 나다. 사서샘들끼리 모이면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사서샘들 중에 없는 성격이라는 말이었다.


   사실 춤을 좋아하기 시작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사립학교라서인지 중학교 때부터 체육과목과는 별도로 무용과목이 필수로 있었다. 넓은 마룻바닥에 한 쪽면이 전면거울로 된 무용실에서 매주 2번씩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기초 무용수업을 받았다. 무용실 끝 쪽에는 리듬체조할 때 쓰는 곤봉과 리본, 볼과 훌라후프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고1 때는 같은 학년 남자애들 4명이 자기들끼리 T.D.M이라는 이름의 댄스팀을 만들었었다. TDM은 결성 직후 청소년댄스대회에 출전하여 지역예선을 가볍게 우승하고 전국대회에서 4등상을 턱하니 타왔다. 브레이크 댄스를 좋지 않게 보던 선생님들도 막상 TDM이 상을 타 오자 입이 귀에 걸리셨었다.


   TDM 덕분에 내 학창시절은 최고 수준의 브레이크 댄스를 종종 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낯설었던 윈드밀, 헤드스핀, 프리즈 등등의 동작 이름들을 알게 된 것도 그 때였다.


   고1 때 조별로 무용배틀을 했는데, 우리 조는 당시 막 데뷔했던 킵식스의 춤을 재구성했다. 춤꾼으로 소문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가 처음으로 키운 아이돌이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춤이었다.


   킵식스의 안무에 영턱스클럽의 우측 나이키 춤을 더하고, 백 나이키에 백 덤블링과 옆돌기까지 결합된 춤이었다. 친구네 팀은 뮤지컬 루나틱처럼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삼아 환자복까지 입고 단체 군무를 준비하기도 했다.


   교회에서도 뮤지컬 팀으로 2004년부터 11년간 매년 뮤지컬 군무를 3~4개월씩 연습하곤 했다. 작은 역할일지언정 연기와 노래 그리고 춤이 함께하는 종합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세상 뿌듯했다.


   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춤들도 너무도 배우고 싶어 2006년에는 1년간 방송댄스를 다녔었다. 자기 전에는 항상 머릿속으로 이번에 배운 동작을 수백 번씩 곱씹었다. 춤 순서는 기가 막히게 잘 외웠다. 몸이 안 따라줘서 댄스샘의 동작만큼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이효리, 효연, 아이키였다.




   그런 배경이 있었던 터라 춤을 막상 배우기 시작하니 너무 신이 났다. 매일매일 춤출 생각에 하루가 즐거웠다. 모든 일상에 생기가 넘쳐났다.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함께 근무하고 춤 연습을 하던 교무실무사 샘 덕분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샘, 춤추는 거 진짜 좋아하는구나.

-왜요? 뭐가 달라요?


-엄청 생기있어지고 눈빛이 초롱초롱해졌어요.

-하하. 그래요?


-딴 사람인 줄. 누구세요?

-앗. 들켰다. 제가 좀 춤에 진심입니다.


   그렇게 드디어 기다리던 축제의 그 날이 왔다. 아이들의 순서가 진행되고 통합지원반의 오카리나 연주도 무사히 끝났다. 학생 장기자랑 심사를 위해 점수가 매겨지는 때가 선생님으로 구성된 댄스팀이 출격할 차례였다.


   사회를 맡은 두 명의 학생이 우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커튼이 쳐진 무대 뒤에서 각자 위치를 잡고, 음악이 시작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놀라운 순서가 준비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순서일지 너무 궁금한데요?


-선생님들이 춤을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진짜요? 와 너무 기대됩니다.


-그럼 바로 볼까요? 선생님들의 댄스타임

-뮤직 스타트~!


   커튼이 천천히 열렸고 뜨거 조명이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3개월 간 수백 번은 들어왔던 원더걸스의 노래 Like this의 첫 부분이 들렸다.


   세상 가장 길면서도 짧은 4분이었다. 3분 14초의 Like this 중간에 시스타의 "나 혼자"를 댄스 브레이크로 믹스하여 만들었다. 댄스 브레이크 구간은 남자 선생님들이 전담하셨다. 아이들의 터질듯한 환호성이 강당 안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의 함성과 조명에 눈이 부셨다. 1초도 쉬는 동작이 없는 춤이라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축제가 끝나고 그 다음주 도서관과 복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내게 자꾸만 쌍 엄지를 치켜들어 보여줬다.


-샘, 춤 완전 인정. 대박적!!

-좋게 봐줘서 땡큐~


   그렇게 우리들의 댄스타임은 끝이 났다. 가끔 그 날의 눈부셨던 조명과 뜨거운 함성, 터질 것만 같던 심장의 두근거림이 그리워진다. 그럴때면 음악을 틀어놓고 아무도 모르게 내적 댄스를 추기도 한다.


   그 어떤 운동보다도 댄스와 걷기를 사랑하는 나다. 걷는 건 야외에서도 가능한데, 댄스를 배우려고 하니 실내체육시설 가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내적 댄스만으로 만족하기엔 자꾸만 아쉽다.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줌바댄스라도 배우러 가 봐야겠다.


   

#댄스에진심 #나의댄스사 #내적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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