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우리가 봤던 건

보았으나 보지 않았다

by Pearl K

흔한 데이트 코스의 정석을 따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마침 SF계열의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타이밍이 좋았던 것 뿐이었다. 만나서 식사를 하고는 보고 싶어하던 마블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기존의 히어로들과는 다르게 조금 특이한 캐릭터인데다가 주인공은 생계형 좀도둑이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그는 양자영역에서 돌아와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준, 앤트맨이다.



앤트맨을 같이 보기로 한 날은 우리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한 후, 네번째로 만나는 날이었다. 낯설고 어색한 사이에서 친구처럼 편안해지는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앤트맨의 이야기는 딸을 생각하는 두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스토리였다.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카페에서 영화 이야기를 비롯한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기분 좋게 돌아왔다.


로부터 한 달 후쯤부터 그와 나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면서 일사천리로 결혼준비까지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처음 만났던 때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앤트맨을 본 날이 서로에게 전혀 다르게 기억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날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에 앉은 그가 신경 쓰이긴 했었다. 왠지 민망해서 차마 옆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치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애써 화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었다.


그는 반대였다. 영화를 보는 대신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내 입술만 보였다고 했다. 화면에만 시선을 고정한 나, 내게만 시선을 고정했던 그.




결혼 이후, 영화채널에서 가끔 해주는 앤트맨을 보았다. 저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처음 보는 씬들이 많이 등장했다. 역시 그 날은 둘 다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앤트맨 이후로 다른 건 몰라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전 작품은 꼭 놓치지 않고 부부가 함께 본다. SF영화를 둘 다 좋아해서 부부의 공통 취향에도 딱 맞는다.


그날의 앤트맨을 떠올린다. 서로에게 처음으로 이성으로서의 설렘을 느끼게 해 준 그 날의 영화관람. 덕분에 지금 이렇게 부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박준하의 '너를 처음 만난 그때' 노래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가르쳐줄 수는 없을까 / 내가 정말 살아있다는 걸 느낀 건 / 너를 처음 만난 그때 / 가르쳐 줄 수는 없을까 / 내가 정말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 너를 사랑했던 그 때란 걸"


#MCU #영화데이트 #앤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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