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계속되고 의심이 쌓일 때

사회초년생 방황기

by Pearl K

계속되는 실패가 가져다주는 첫 번째의 의심은 "나는 충분히 노력하였는가?"로부터 시작된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처음에 확신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풍선 바람이 빠져나가 버린 듯 쭈글쭈글해지고, 그 빈자리에는 의심이란 것들이 조금씩 똬리를 틀게 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위해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곳이라던 서울은 예상외로 평온해 보였고, 나는 순진하게도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인터넷 환경이 월드와이드 웹으로 막 바뀌는 시점이었다. 익스플로러 초기버전이 나왔고, 각 기업마다 회사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매출 이익을 올리려는 새로운 시도들로 가득했다.


그때 성행한 것이 바로 그래픽 디자인 학원이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맥 등 다양한 형태의 그래픽 디자인을 교육시켜 주고, 헤드헌팅 업체와 연결하여 꽉 막힌 취업문을 뚫어주겠다는 사회 초년생이 보기엔 충분히 혹할 만한 정보였다.


선릉역 근처 월 23만 원 하는 1.8평짜리 고시원에 짐을 풀고, 나는 매일 광화문으로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출근했다. 헤드헌팅 업체에서 이력서와 자소서를 요구했고, 갓 졸업한 내가 쓸 거라곤 학력과 정사서 2급 자격증 그리고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 전부였다.


헤드헌팅 회사에서는 계속 원서를 넣고 있다고 했고, 100군데를 지원했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은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다. 컴퓨터 그래픽 학원의 학생 모집을 위한 취업빙자 사기를 당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겨우 환불받아낸 4개월치의 학원비로 신용카드 폭파는 막았는데, 매달 나가야 하는 고시원 월세와 생활비는 이미 감당 못할 수준의 빚이 되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했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는 내게 또 다른 의심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동안 헤드헌터가 원서를 냈다고 말한 100개의 회사는 진짜였을까? 100개나 되는 회사가 모두 정상적인 기업체이긴 했을까? 원서를 입맛에 맞게 골라냈던 건 아닐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무려 100개나 되는 회사에서 1차 원서접수에서부터 단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생각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했다. 나라는 사람이 일할 곳이 한국에 있기는 한 걸까?



수많은 의심과 의심이 겹겹이 쌓여 나는 스스로를 무너뜨려 갔다. 그야말로 한 끼의 끼니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일주일을 유령처럼 부유하며 취업할 곳을 찾아다녔다. 지하철에서 나누어 주는 각종 무가지*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사이트, 헤드헌팅 업체, 노동청 같은 관계기관까지 일자리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계속 돌아다녔다.


새로 시작하는 한 카드사의 CS 고객만족팀 공고가 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원해서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한 번의 성공적인 경험은 다음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용기를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실패가 거듭된다고 해서 거기에서 그저 멈추고 포기했다면, 나는 분명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어느새 자라나 나를 가득히 찔러대던 스스로에 대한 의심들과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잠시 어찌할 줄을 몰라 헤매었다. 수많은 소리들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건 힘내라는 말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졸업식 때 친구가 해 준 한 마디 '너 그때 그 힘든 일도 견뎠잖아. 넌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아.'였다.


그 말 덕분에 다시 일어설 마지막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용기가 결국 의미 있는 첫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시작이었다. 그 후로도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실패와 좌절은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내 삶을 두드렸고, 그때마다 수많은 의심들로 나를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매일 새로운 용기를 내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삶의 생애주기별 과업 달성의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꽤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또다시 온갖 의심들과 두려움들이 머릿속을 괴롭히는 시간이다. 두려움을 딛고 용기를 낼 힘이 필요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쭈글쭈글해진 마음을 펴고 빈틈 사이로 찾아든 의심들을 날려 버리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겠다.


실패는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에게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어줄 테니까. 분.명.히.



주) 무가지 : 무료로 배포되는 신문이나 잡지를 말하며 도시철도와 연계된 현대 도시문화의 일종이다



#실패 #의심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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