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느린 자전거

by Pearl K

체육대회라고 하면 어떤 풍경이 먼저 생각나는가? 운동장에 걸린 만국기, 여기저기 체육복과 청백 머리띠를 한 아이들, 단체 매스게임, 엄마가 싸온 스페셜 도시락이라고 생각했다면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를 다니신 분이다.


요즘의 체육대회 풍경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반별로 컨셉을 정해 모자부터 티셔츠까지 반별로 다 맞춰입기도 하고, 미리 준비한 반별 치어리딩으로 체육대회의 오후 시간을 시작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건 있다. 체육대회에 참여하는 애들만 한다는 것.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체육대회는 종목도 거기서 거기고, 특별히 새로운 경기가 없다 보니 항상 상을 타는 아이나 주전으로 뽑히는 아이가 거의 정해져 있다.


구기종목인 축구와 피구, 농구 등을 비롯하여 체육대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계주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구기종목에서 예선탈락을 하고 나면 사실상 체육대회 당일에 할일이 없다. 마지막 계주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하루종일 운동장에 앉아 대충 시간을 때워야 했다.

당시에도 응원상이 있긴 했지만 요즘처럼 티셔츠에 응원도구까지 맞추는 체계적인 응원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소외되는 아이들을 방지하기 위해 단체 줄다리기 같은 것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힘으로 하는 경기다 보니 결국 우승반은 정해져 있었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소외되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저 시간을 때울 코너가 필요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누가 아이디어를 낸 것인지 생판 처음 보는 새로운 경기가 중3 체육대회 때 등장하게 되었다.


학창시절 포함 학교에서만 33년째인 내게도 전무후무하게 생소한 경기인 걸 보면,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하고 탁월했다고 인정한다. 그 종목은 바로 '자전거 느리게 타기'였다.


달리기 경주를 하듯이 반별로 한 명씩 자전거를 탈 대표가 나와서 출발선에 자전거를 탄 채로 선다. 출발 신호를 듣고 나면 자전거 페달 위에 발을 올리고, 1분간 발을 굴리며 움직이는데 최대한 앞으로 덜 나간 선수가 1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는 많았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자전거를 잘 탄다는 제보로 특별 지목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우리반의 대표 선수로 이 기이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고, 나는 자전거 위에 앉아 페달을 아주아주 느리게 평소보다 100배쯤 느린 속도로 천천히 돌렸다.


바퀴는 구르면 당연히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고, 제자리에 서 있으면 넘어지게 된다. 아주아주 천천히 바퀴를 굴리는 동안 옆의 다른 반 친구들을 슬쩍 쳐다보았더니 난리도 아니었다. 한 친구는 자전거를 탄 채로 페달 위에서 균형만 간신히 잡고 있었고, 다른 친구는 아예 자전거 페달을 거꾸로 돌려버리기 시작했다.

자전거 느리게 타기 대회의 그 1분이 얼마나 길었는지, 온 세계가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0.1cm씩 앞으로 미묘하게 전진하던 내 자전거는 결국 균형을 잃었고, 나는 모래운동장을 직접 맛보아야 했다. 1등이 된 건 현명하게 바퀴를 뒤로 굴려 출발점 뒤로 돌아간 친구였다.


나는 앞으로 느리게 나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자전거를 굴려야 했었다. 느리게 간다는 것을 단방향으로만 받아들인 관점의 차이는 승패를 갈라놓았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어쨌든 느리게 가서 최단 거리를 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현타가 올라올 때가 있다. 애초에 세상의 규칙 같은 건 따르고 싶어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걸 신경쓰고 있다니. 이제와서 그 룰에 맞추지 못하는 내가 굉장히 커다란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우습다.

룰은 바뀌기 마련이고, 세상의 규칙이란 것도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제까지처럼 나만의 룰로 내가 만들어 온 길에서, 좀 느리더라도 방향이 남들과 다르더라도 씩씩하게 갈 거다. 혹시 지금은 마이너스 같지만 앞으로 어느 때엔가는 플러스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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