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유치원 가기 전에 아침마다 방영하던 TV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TV유치원 하나 둘 셋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던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몇 년 전 마리텔에 재등장해 많은 사림들이 반가워했던 만들기 아저씨 '김영만 아저씨'도 여기에 나오셨던 분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반에서 하나, 둘, 셋. 3번을 넘어가 본 적이 없다. 가나다 순으로 헤도 성이 기역으로 시작되고, 자음도 'ㅏ'라서 최소한 3번 안에 들었다. 키로 해도 워낙 작아서, 3번을 넘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는, 전교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작았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뒷번호가, 여자 3번이었던 33번이다. (여학생 번호가 31번 부터였다.)
학창 시절엔 뒷 번호가 그렇게 부러웠다. 나는 언제쯤 키가 커서, 뒷번호가 되어 뒷줄에 앉아보나 생각도 했다. 번호도 3번 안쪽이었지만, 거기다 4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앉는 자리도, 세 번째 줄 뒤로 간 게, 손에 꼽힐 정도였던 것 같다. 늘 교탁 바로 앞자리 아니면 두 번째, 세 번째 줄에 주로 앉게 되기 일쑤였다.
졸업 후에 이름순이나 번호순에서 자유로워진 후에는 하나, 둘, 셋의 굴레에서 나도 좀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30대 초, 중반 즈음부터 재미난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육아하느라 한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들에게, 가끔 부재중 전화나 영상통화가 와 있는 것이다. 처음엔 '무슨 급한 일이 있어 걸었나' 생각하고, 회신전화를 해봐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아, 문자나 카톡을 남겨놓곤 했다.
그러다 그 이유를 알고 친구와 크게 웃었다. 결혼 후 육아에 바쁘던 친구들의 아이가 조금 자랐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멋모르고 휴대폰을 만지며 이것저것 누르다가, 가끔 전화연결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공교롭게 가나다 순으로 배열된 휴대폰의 주소록에서, 내 이름은 주로 목록의 첫째, 둘째, 셋째 안에 있다. 육아에 정신없는 친구는, 전화가 걸렸던 줄도 모르고, 아이에게서 폰을 빼앗아 다시 돌려놨을 것이다. 내가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연락을 한 후에야, 내게 전화가 걸렸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육아로 한참 바쁠 타이밍의 선배나 친구들, 후배들의 부재중 연락이, 핸드폰에 남아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귀여운 랜선 조카들의 고사리 손이 생각나 미소 짓게 된다. 전화가 울려도 괜찮으니, 엄마폰이든 아빠 폰이든 마음껏 눌러보렴. 대신 이모(고모) 이름이 첫째, 둘째, 셋째 순서 안에 있다는 거 잊지 말고 기억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