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뛰지 않는 이유
나의 하늘을 본 적이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배우는 어린 시절, 호기심이 가득해 지구를 뿌실만큼 질문을 하고 또 해댔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궁금함과 질문이 넘쳐나는 아이였다.
취학 전 아동이 질문할 곳이라고는 부모님 뿐이다 보니, 궁금한 게 생기면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질문을 퍼부어댔다. 연년생에 나이 차이 별로 없는 줄줄이 삼남매를 케어하던 엄마에게 나는 주로 엄마를 정신없게 하는 아이였다.
아빠가 퇴근하시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질문을 해보았지만, 3교대 근무로 이미 지친 아빠에게도 나의 적당함을 모르는 질문세례는 피로를 더욱 더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질문대장인 나는 종종 탁구공 신세가 되곤 했다. 결국 그만하라는 야단을 듣고 나서야, 조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궁금함을 풀지 못한 아쉬움과 서러움에 한 바가지씩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 가장 궁금해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왜 어른들은 뛰어다니지 않아요?'하는 것이었다. 어린시절에 나는 차분히 걸어다닐 줄을 몰랐다. 땅에 발을 붙이고 걷기는 커녕, 마치 탱탱볼이 튀듯 통통 튀어서 다녔다.
키도 작고 몸도 가벼웠던 데다가 모든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한데 천천히 걷다니. 전속력으로 뛰어 다니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걸음걸이는 언제나 춤을 추듯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가볍게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
그때 어른들이 왜 뛰지 않고 걸어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작고 가볍던 어린아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깨우칠 수 있었다. 어른들이 뛰어다니지 않는 건 몸이 무거워져서, 뛰고 싶지 않아서 혹은 굳이 뛸 이유가 없어서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답은 틀린 것 같다. 어른들이 더 이상 뛰지 않는 진짜 이유는 뛰어다녀서 알고 싶을만큼 더 궁금한 것이 없어서가 아닐까.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혹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과 질문 같은 것들이 사라지면서 어른들은 뛰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불과 10여년 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땐 아직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남아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 내가 궁금한 것, 알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때로 뛰어가기도 했다. 시간을 내고 그 영역을 위해 내 열정을 쏟았다.
근데 지금은 그 열정과 호기심, 궁금증 같은 것들이 내게서 거의 사라졌다고 느낀다. 남아있는 것들은 아주 희박해서 바닥에 얇게 먼지처럼 깔려있을 뿐이다. 가끔 새로운 바람이 불면 한 번씩 날리기도 하지만, 그때 뿐이다.
다시 뛰고 싶다. 궁금해 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하던 어린 시절처럼. 푸석푸석하고 메마른 삶을 다시 이가 시리도록 시원한 냉수로 가득 채울 수 있다면 좋겠다. 함께 이 길을 뛰어줄 변치 않는 영원한 짝꿍,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