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기억은 삭제되어도 사진은 남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풍경을 보는 것보다 사진을 찍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지금은 파일로 저장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고이 사진첩에 붙여 보관했었다. 집집마다 커다란 가족사진첩이 적게는 2개 많게는 3~4개가 있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모여 사진첩을 펼쳐보면 금세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사진첩을 펼쳐보는 것만으로 사진 한 장에 담긴 그 당시의 풍경, 냄새, 분위기가 느껴진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금세 찍었다가 삭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처럼 사진 1장의 가치가 소중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휴대폰 카메라로 똑같은 사진을 수십 장 수백 장씩 찍어 잘 나온 사진 몇 장만 빼고는 쉽게 삭제하고 만다. 200장 찍어 1장 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라떼는 말이지~ 처음부터 빛이 안 들어가게 카메라에 필름을 잘 끼워야 했다. 가끔 필름을 끼우다가 햇빛이 들어가 필름 한 통이 통째로 못 쓰게 되기도 했다. 그러면 찍었던 사진은 모두 꽝이 되는 거였다. 사진을 다 찍은 후엔 필름을 끝까지 감아야 했다. 다 감은 필름은 검은색 필름통에 넣어 빛이 들지 않게 뚜껑을 꼭 닫은 후 그대로 필름 인화를 위해 사진관에 맡겼다.
인화된 사진을 보기 전에는 사진이 제대로 나왔는지 아닌지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러 가서 현상을 부탁하면 찍었던 사진이 현상되어 나오는데 며칠이 걸렸다. 내가 고3을 마칠 때쯤 동네에 딱 하나 있던 필름 가게가 사라졌다. 고3 때 자주 가던 음반 가게 바로 옆에 위치한 당시 가장 유명했던 일본 F사의 필름이었다.
필름이 비싼 편이어서, 사진을 인화한 후에는 이상하게 나온 사진도, 구도가 엉망인 사진도, 찍지 말라고 하다가 찍힌 사진도 모두 사진첩에 고이 꽂아 두었다. 그러다 사진첩이 가득 차면 별로인 사진들은 골라 빼낸다.
그리고 사진관 봉투에 담아 앨범 맨 뒷 장에 봉투째 끼워 두곤 했다. 그렇게 끼워둔 사진관 봉투가 4~5개쯤 되었던 것 같다. 사진첩이 부족해서 큰 사진첩 2개와 작은 사진첩 2개에 최대한 간격을 좁혀 사진을 붙여 넣어야 했다.
사진첩에 사진을 보관할 때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사진첩에 넣어 둔 사진도 시간이 지나면 변색된다는 것이었다. 사진첩에 넣은 지 너무 오래된 사진은 때로 뒷면 종이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떼어 옮기려고 하면 찢어지는 일도 있었다. 또 빛이 닿은 곳만 누렇게 바래져있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우리의 생생한 기억도 빛바랜 사진첩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며 아련하게 바래져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때 알았더라면 좀 더 많은 사진을,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찍을 수 있었을까?
그런 사진첩이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아니라 사진첩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평소 기억력이 유달리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 중에는 별 걸 다 기억하는 여자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다.
나도 가끔 신기할 정도로 생의 순간순간마다 사진을 찍어둔 것처럼 유난히도 생생한 장면들이 있다. 한 장면 한 장면 그날의 생생한 장면, 분위기, 소리, 장소, 느낌 등을 사진 한 장처럼 기억 속에 새겨둔 것들이 있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태어나 처음 집에 온 날. 다섯 살, 허리까지 눈이 쌓인 날. 일곱 살, 초등 1학년 받아쓰기 첫 시험날. 여덟 살, 전학 가기 전날 친구들이 해 준 놀이터 송별회. 아홉 살, 온 가족이 함께 갔던 비 오는 날의 내장산 단풍 등, 이것 외에도 아주 많은 장면들이 한 장의 장면으로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고, 가끔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모션 포토처럼 움직이며 그 시절 속으로 나를 초대하기도 한다.
요즘 아주 예전 기억은 점점 생생하고 선명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최근 기억은 더 흐릿해진다. 가끔 두렵다. 아직은 생생한 내 기억의 사진첩들이, 어느 순간 빛바래고 낡아져 갈까 봐. 그런 때가 오더라도 아예 깜깜해지진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이미 시작된 것도 같다.
내 기억 속 사진첩들에 조금 빛이 바래거나, 모든 일이 헷갈릴 정도로 기억이 흐려질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남은 기억들이 오래된 추억의 명화처럼 은은한 아련함을 잃지 말아 주기를. 선명하진 않더라도 아름다웠던 기억과 추억의 분위기로 남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들이 있다. 그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두 곡, 드래곤플라이와 박명호의 곡을 추천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