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하게 발가락 뼈가 부러졌다. 몸 전체로 보면 작디작은 발가락 하나만 불편한 것인데, 이 작은 것 하나로 인해 내 몸 전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어릴 때도 한쪽 팔에만 세 번이나 깁스를 했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오른팔을 다치는 바람에 한 달 넘게 왼손으로 필기를 해야 했었다. 더 어린 6살 때는 양쪽 다리를 한 번에 깁스한 적도 있다.
양다리를 깁스했으면 많이 불편했을 텐데, 신기하게도 내 기억에는 다친 다리로 인해 불편했을 부분이 전혀 없다. 매번 유치원까지 나를 안아서 데려다주었던 아빠 덕분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나 보다.
6살 때 이후로는 다리에 깁스를 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자주 다치고 굴러서 다리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지만, 절뚝거리기는 해도 걷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영 낯설고 생경하기까지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드라마 한 편이 기억이 났다.
2000년에 TBS에서 방영한 11부작의 일본 드라마 <뷰티풀 라이프>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이다. 드라마 속에서 쿄코(토키와 다카코)는 어릴 때 앓았던 병으로 인해 다리를 사용할 수 없지만, 사서로서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미용사인 슈지(기무라 타쿠야)는 이러한 교코를 평범하게 대해주고,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거의 마지막쯤인 10~11화에서 교코와 슈지가 힘께 바닷가에서 미용실을 하는 꿈을 이야기하다가 '배리어 프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장면이 내게 몹시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배리어 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교코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계단이나 문턱을 없애자는 것과 동시에 슈지가 교코에게 처음부터 특별한 벽이나 태도 없이 행동했던 것을 '마음의 배리어 프리'라는 것으로 설명한다.
다리를 다치고 깁스를 하고 나서 보니, 가는 곳마다 계단은 왜 이리도 많은지, 다른 길을 사용하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불편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하는 듯한 시선이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평범하게 생활하려고만 해도 얼마나 불편한 지점이 많은 사회인지, 이번에 다리를 다치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인 배리어 프리 정책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속부터 진정한 '배리어 프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또한 하게 되었다.
마음의 배리어 프리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장애가 있고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동정과 연민으로,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 역시 또 다른 벽을 만드는 생각일 수 있겠다 싶다. 최소한 쉽게 타인의 불편함을 규정해버리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구 작가님의 <그래도 괜찮은 하루>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소리를 잃고 시각을 잃어도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요. 아직 기분 좋은 향기가 남아 있어요. 아직 제겐 많은 감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느낄 수 있어요. 달콤한 향, 상큼한 향, 새콤한 향, 상쾌한 향. 여러 향기에 취해 행복하게 사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 것 같아요. 계속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 있으니까요."
p.s: 비슷한 계열의 일드로는 칸노 미호가 주연했던 <너의 손이 속삭이고 있어>라는 드라마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