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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Nov 29. 2021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FA 시즌에 대한 단상

지금은 FA 시즌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전보내신을 쓰는 타이밍이다. 교회도 보통 교역자들의 이동이 이맘때쯤 가장 많다.  


다음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올해 유난히도 퇴사를 준비하거나 직장을 옮기는 지인들이 꽤 있다.


   바야흐로 익숙해졌던 것들과의 이별과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이즈음의 달간 이 내게는 꽤 오랫동안 고통스럽고 움츠러드는 날들이었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운영 회기는 매년 3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2월에 종료된다. 275일 근무자일 때는 방학이란 곧 강제 무급 휴일의 시기였다.

   

   그나마 365일 근무자가 된 이후에도 방학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똑같이 한 학기를 애쓰고 생활하며 보내는데, 내게만 방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계속 출근을 한다면 괜찮은데, 매일 혼자만 출근하는 것은 싫었다. 텅 빈 학교에서 안 그래도 넓은 공간이라 더 추운 겨울에 하루를, 한 주를 한 달 두 달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다. 이 길고 긴, 게다가 춥고 서럽기까지 한 겨울방학 내내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방학 잘 보내라는 다른 샘들의 인사에 잔뜩 꼬인 마음으로 "전 방학이 없는데요? 저도 방학해도 되나요?"하고 되묻기도 했었다. 가볍게 건넸을 그 인사가 내게 얼마나 큰 상대적 박탈감이었는지는 아마 그분들도 몰랐겠지.  

   

   혼자 남는 겨울을 더 춥게 만드는 건 내가 이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거였다. 나의 목숨이 내가 아닌 관리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을만큼 열심히 일해도, 주어진 모든 것에 최선에 최선을 다해도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다음 해에도 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가 금세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때로는 일부러 불러다가 내년에 계약을 유지하려면 예산이 많이 들어서 고민 중이라고 협박과 회유를 일삼는 관리자들도 있었다.


   고용계획이 지속적인지 아닌지만이라도 조금만 더 일찍 이야기해줄 수는 없었을까. 그것만으로도 겨울방학 내내 하루에도 열두 번씩 혼자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최소한 다음 일할 자리를 구할 여유는 생겼을 텐데.


   그렇게 극한의 감정을 왔다 갔다 방황하다 보면 모자란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밖에 안 되어서 당당히 한 마디도 못하는 나 스스로가 미워졌다. 서울의 집값은 비쌌고, 고시원의 월세라도 내고 학자금을 갚고,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하려면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때로는 그 지독한 시간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스스로 마음의 마침표를 찍었던 적도 많았다. 어차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쿨하게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계속 마음을 먹어도 절대 쿨해질 수 없었다는 거다. 환호와 박수가 가득한 작별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인사도 못하고 떠나야 했던 적도 많았다.


   일을 시작한 지 꼬박 12년 만에 여전히 비정규직인 채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다. 12년 동안 매년 마음을 졸이던 기억 때문인지, 이맘때가 되면 나도 모르게 다시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선득해진다. 때로 무엇인지 모르는 악몽을 꾸고 화들짝 놀라 깨어나기도 한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참 어렵다. 그런 만남과 이별이 반복될 때마다 온몸에 칼날을 두른 고슴도치가 된다. 가시를 가득 두르고 누가 내 연약한 속살을 찢어놓지 못하도록 잔뜩 예민해진다. 그런 상태로 몇 달을 보내야 한다는 게 또 다른 고통이 되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가둔다.


   본의 아니게 원치 않는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그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올해도 너무너무 고생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준비된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게 일하실 수 있기를 소망하고 응원합니다."


   

https://youtu.be/XZ4UK31Fp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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