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그림자를 드리운 해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타이밍. 해가 귀가하면서 구름마다 층층이 붉은 노을을 조금씩 걸어두고 간다.
해가 퇴근을 서두르는 만큼 땅 위로는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는다. 짧아진 태양을 볼 때마다 찬란하게 낮을 태우던 여름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타고난 태생이 야행성이다 보니 환한 낮보다 어둑어둑해지는 밤이 되어야 더 생기가 도는 사람이 나다. 언제나 밤은 좋지만 이맘때쯤 만나는 밤은 평소보다 왠지 더욱 쓸쓸하고 추운 기분이 들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나날들을 지나고 있다. 계절의 끝자락인 겨울에 삶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본다. 언제쯤 이 시간이 끝날까 탈출의 날짜만 세며 버티던 10대를 벗어나 잠깐의 달콤한 자유를 맛보기도 했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두려움과 진짜 나를 찾아가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20대. 모든 것이 안정되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더 괴로워했던 30대. 삶은 언제나 나름의 팍팍함이 있고, 수많은 인생의 경험이 고통스러운 시간의 통증을 줄여주지는 않았다. 반면에 인생의 연차가 쌓이는 것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이유 없는 고통들을 이해할 여백을 조금씩은 더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좋았던 시절도 힘들었던 시간도 모두 다 지나간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배운 건 그 사실뿐이었다.
10여 년 전에, 윌리엄 폴 영이 쓴 책 <오두막>을 읽었다. 당시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던 이 책은 그전까지 내 멋대로 세워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덕분에 틀에 완전히 갇혀있던 내 생각을 깨뜨리고 온전히 하나님과 자신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며칠 전 심심해서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그 오두막이라는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책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깨달음이 있었다. 특히 몇 문장의 대사가 내 마음을 작정하고 두드렸다.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이 파인 거 알아.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자네를 유독 좋아한다네. 자네 마음을 해치고 우리 사이를 가르는 그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어."
마치 내 마음을 읽으신 건가 싶을 정도로 내면의 문제들과 상처들, 또한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생의 어려움들을 짚어주었다.
"아무리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난 자네가 엉망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며 자넬 돕고 있어. 그게 내 일이거든."
영화를 보며 책으로는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도 다시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작품을 보는 내내 그분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통 없는 삶을 약속받고 싶어요? 그런 건 없어요. 이 세상에 신을 따르려는 의지가 있는 한, 악은 파고들 수 있어요."
"아픔을 가시게 할 쉬운 방법은 없네. 임시처방은 결국 오래 못 가."
저녁이 되어 찾아오는 땅거미의 어스름함도, 인생의 계절마다 다가오는 때마다의 어려움도 우리가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삶의 고통들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짧지만 고통은 길고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 쫓아가지만 쉬이 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늘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 우리에게 닥친 어렵고 힘든 비극적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더 나은 방향의 선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Better faith'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명 한 명을 모두 특별히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믿음. 고통과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더 나은 방향으로 선한 영향력이 되도록 우리의 삶을 이끄실 거라는 믿음.
"난 말할 수 없이 큰 비극에서 놀랍도록 좋은 일을 이끌어낼 수 있다네. 그렇다고 비극을 일부러 꾸미진 않아."
보잘것없고 엉망진창인 우리의 삶이지만 언제나 그 속에서 하나님이 선한 것을 이끌어내실 것이라는 '나은 믿음(better faith)'으로 하루하루를 다시 힘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