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어디를 보며 날까

우리가 선의로 착각하는 것들

by Pearl K

사람의 선의라는 건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다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살아남은 아이, 생존자다. 원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사고 당시 겨우 열일곱 살 밖에 안 되었던 언니 덕분이었다. 언니는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동생을 담요에 싸서 창 밖으로 던져 구했다.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원이를 구해주고 죽은 언니, 떨어지던 이불 아기를 받아내면서 다리를 크게 다쳐 불구가 된 아저씨에게 빚을 진 거라는 이야기를 수십 번 혹은 수백 번쯤 듣고 자랐다. 이제 막 열일곱 살이 된 원이는 그 말이 부담스럽고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말은 선의였을 것이다. 때로는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 사이 그 틈에서 미처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적어도 그 모든 걱정과 염려를 가장한 아무 말들은 원이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지 않았다.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죄책감을 강요당하는 여러 시선들을 답답해하던 원이는 학교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수현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게 된다. 자신을 '그때 그 이불 아기'로만 보지 않는 수현 덕분에 그나마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환희가 생각났다. 건장하고 잘 자란 이십 대의 청년을 보며 내가 먼저 떠올린 것은 고 최진실 씨의 얼굴이었다. 엄마를 닮은 외모와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플렛이라는 랩 네임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등장한 환희가 반갑기도 애틋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저만 보면 잘 살아라, 행복해라 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나도 궁금해져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는데, 오은영 박사님의 답변에 세게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환희는 건강하게 엄마를 잘 보냈고 좋은 추억들도 많고, 멋있는 청년으로 성장했는데 정작 국민들이 아직 고 최진실 배우를 떠나보내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이었다.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지만 그동안 그런 말들이 얼마나 그에게 부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의 주인공인 유원이가 자신을 둘러쌌던 답답한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깊이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에는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겪으며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다. 계속해서 어떻게든 주어진 삶을 이어 나가야 한다.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스스로 감당할 만한 몫을 배워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래를 내려다본 만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는 땅을 보며 날까, 하늘을 보며 날까. 하루는 땅을 보며, 하루는 하늘을 보며 날겠지."



인생을 살다보면 땅을 보며 날아야 하는 날도 하늘을 보며 날 수 있는 날도 있을 거다. 어떻게 날든 그 모든 선택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지켜보고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의를 가장한 아무 말이 아닌 진심으로 필요한 응원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 사람들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이 걸어가는 발걸음을 응원할 수 있는 어른으로 남길 원한다. 내 삶도, 다른 이들의 인생도 그렇게 흔들리며 균형을 찾는 가운데 계속 이어져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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