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지옥, 해피니스 등 최근 유행한 콘텐츠들에는 굉장히 유사한 특징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극한의 상황을 딛고 살아남기 위해 진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각 작품마다 벌어진 극한의 상황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도덕성이다. 평범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지키는 것처럼 보였던 최소한의 도덕성은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 가차 없이 바닥난다.
2002년에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책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동일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가 쓴 이 책에는 어느 날 갑자기 운전하다 실명이 된 한 의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명 백색 실명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진다. 모두가 아비규환에 빠진 중에 유일하게 실명되지 않은 의사 아내는 남편 곁에 있기 위해 실명을 가장하고 함께 수용소로 간다. 그녀는 유일하게 눈을 뜬 자로 이 도시와 사람들이 붕괴하는 것과 인간이 얼마나 바닥까지 잔악해질 수 있는지를 모두 지켜본다. 또한 이 모든 모순과 불의함 속에서 아직 남아있는 인간의 선함과 도덕성을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함께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해피니스에서도 똑똑하고 가진 것 많아 보이던 동대표와 의사, 변호사 등 알만한 사람들이 가장 악독했다. 광인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쓰며 도태시키려 애쓴다. 집의 가격과 층수로 사람을 나누어 편을 가르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것을 쉽게 도둑질하고, 편을 만들어 이간질한다. 그러다 심지어 살인교사까지 저질러 자신에게 거슬리는 이들을 죽이는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까지도 보여준다. 결국 그들 모두 본인의 방식으로 최후의 궁지에 몰리게 된다.
수많은 이들이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중에도 여전히 '인간다움'을 지키려 애쓰는 이들은 무수해 보이는 각종 장애물과 난관을 넘어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토록 원하던 생존을 이루어낸다. 결국 이들이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주인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다움을 지킨 주인공의 생존을 가능케 한 것은 많은 부분 그들이 도왔던 사람들의 보은 덕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타인의 생존을 같이 도모하는 이들이 살아남는 서사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은 서로 돕고 사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회학적 정의와 인간의 도덕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확인시켜 주는 이러한 작품이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점점 커져가는 소득격차와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극한의 환경들. 사각지대가 마치 지뢰밭처럼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사람들은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는 시대.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극한의 팬데믹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점점 더 살아가기가 팍팍해지는 세상이다. 서로의 거리는 여전히 너무 멀고, 진심을 드러냈다가는 사냥감이 되기 일쑤다. 흔들리는 세상과 흔들리는 관계 속에서 나 혼자 제대로 살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지켜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한 발짝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는 것. 서로가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는 것. 잘못된 일에는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것.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이러한 것들이 결국 우리가 사는 사회를 더 좋아지게 하고 나아지게 한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