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결정

하나로 통합된 세계

by Pearl K

※ 이 글에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거리를 걷던 한 청년이 가게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는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밀어서 연다. 딸랑 하는 차임벨의 소라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청년이 입을 떼려는데, 그녀가 먼저 말한다. "뭘로 드릴까요?" 그는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포기하고는 음료를 한 잔 주문한다. 무심히 돌아선 그녀는 익숙한 듯 음료를 만들어 그의 앞에 내민다. 빤히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그가 이상한지 그녀는 재차 묻는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니에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는 문을 열고 가게를 나가려다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 가게 안의 그녀와 바에 앉은 한 남자를 찬찬히 들여다 본 후, 문을 닫고 거리로 나선다.


사랑하기에 포기한다는 말이 허울 좋은 변명이라고 생각해왔다. 내 눈 앞에 비춰진 모습은 그 말 외에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 개봉한 새로운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이야기다.


스파이더맨은 마냥 귀엽고 어리게 보였던 동네 이웃의 영웅에서, 어벤져스 앤드게임을 통해 전세계를 구하는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성장해 왔다. 거기에 아이언맨이 세상을 떠나면서 부여된 다음 세대의 히어로 라는 무거운 짐도 지고 있었다.



미스테리오의 사망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던 피터 파커는 자신의 실명과 민낯이 전세계에 보도되는 만행 앞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이 일로 여자친구 MJ와 절친 네드의 삶까지 흔들리자 피터는 어뗳게든 해결하려고 스티븐을 찾아간다.


십 대 특유의 불안정함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을 본의 아니게 어긋나게 만들었고, 결국 그 마법의 주문은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을 불러온다. 피터 파커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계 뿐만 아니라 평행우주에서까지 모두 소환되기 시작한 거다.


마블은 이제까지 영화화된 스파이더맨의 모든 빌런들을 톰 홀랜드가 피터 파커인 이 세계로 불러들인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았다면 알 수밖에 없는 빌런들 그린 고블린(노먼 오스본), 닥터 옥토퍼스 뿐만 아니라 샌드맨, 일렉트로, 리저드까지 줄줄이 등장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빌런들에 함께 대항할 스파이더맨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해 둔 마블. 스파이더맨을 최초로 연기했던 토비 맥과이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류 가필드가 톰 홀랜드 버전의 세계를 구해내기 위해 힘을 모아준다.


특히 가슴이 찡했던 건 상심으로 너덜너덜해져 있는 톰 홀랜드에게 두 명의 선배 스파이더맨이 전했던 위로의 말들이었다. 복수심에 가득 차오르던 피터 파커에게 다른 두 명의 피터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위로를 건넨다.


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긴다.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절망에 빠질 때 흔히 스스로를 탓하기가 쉽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조금 더 저렇게 했더라면 하는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한다.


3년째 계속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일이 있다. 그 일이 내 삶에 이루어지기나 할 지, 아니면 헛된 소망일 뿐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 어떤 것도 장담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걸음 한 걸음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사랑하기에 자신을 알고 지지해주던 좋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스파이더맨은 어려운 결심을 한. 결국 자신을 알리는 것을 포기하고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아는 이들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이웃들의 좋은 친구로 남을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지키고 싶어하던 두 세계는 큰 아픔을 겪고 마침내 그렇게 하나로 통합되었다.


풍류대장 마지막화를 보다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피터 파커에게 위로를 담아 이적의 '같이 걸을까'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졌다. 이미 오래 먼 길을 걸어온 우리의 삶이지만, 앞으로도 평탄하리라는 법은 없다. 예상보다 높은 산과 더 거친 강과 아득한 깊은 골짜기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끝자락이 올 때까지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이들이, 그를 마음으로부터 지지해 준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피터가 그랬듯 리도 다음의 생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다시 찾아올 스파이더맨 영화에서는 한층 더 성장한 피터 파커를 만날 것이 기대된다.



"피곤하면 잠시 쉬어 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까.

물이라도 한 잔 마실까

우린 이미 오래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니까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때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 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실어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도 물어도 모르는 채 다시 일어나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이적, 같이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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