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장엄한 자연 앞에서 넋을 놓고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잠기고 싶었다. 그건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싶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지금 나는 그 장엄함 앞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장엄하고도 드넓은 자연 속에서 숲과 산과 강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몸은 이미 조금씩 흙과 먼지로 부서지며 땅과 하나가 되어가고, 마지막 순간 내뱉은 숨은 공기에 실려 떠다니며 이곳에 가득한 나무들과 같이 호흡하고 있다.
또랑또랑한 검정 눈동자와 부드러운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아이. 내게는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있었고, 활기차게 걷기도 뛰기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맛있게 음식을 먹은 후에는 소화도 무리 없이 시킬 수 있었다. 한없이 건강하고 생기가 넘쳤던 내 몸은 어쩌다 이곳, 쉽게 찾지 못할 공간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무 사이로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땅에 깔려있던 갖가지 나뭇잎들이 한 번씩 하늘을 향해 회오리 춤을 추듯 날아오른다. 바람과 나뭇잎들의 왈츠가 계속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조그마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은 진동은 점점 크게 울려대는 땅의 떨림으로 전해져 온다.
쿵쿵 울리는 땅이 내는 큰 북소리와 한바탕 바람의 회오리 왈츠가 끝나고 다시 내려앉는 나뭇잎들 사이로 걸어오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눈꺼풀은 힘을 잃어 이미 눈 위를 덮었고, 호흡도 떠난 지 오래지만 어째선지 나는 사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사내는 카키색 카고 팬츠에 검은색 셔츠와 베이지색 사파리 집업 조끼를 입었다. 그는 큼지막한 가방을 들고 있다. 내가 있는 곳까지 다다른 사내는 곁눈질로 주변을 쓱~ 한 번 둘러보았다.
오후의 지는 해를 받아 환하고 따뜻해진 나무 아래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은 사내는, 기다란 삽을 꺼내 땅을 파기 시작한다. 고요하던 공간에는 단단해진 땅과 돌들이 삽과 부딪쳐 내는 쇳소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깡깡 하고 끙끙하는 소리에 나무 위에서 졸던 새들은 놀라 푸드덕푸드덕 다른 쉴 곳을 찾아 날아가고,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땅을 묵묵히 파내려 간다.
식스 핏 언더(6ft under)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식스 핏 언더란 유명한 데스 메탈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관을 땅 속 6피트 깊이로 묻는 것을 나타내는데 결국 '죽은 자'를 상징하는 표현이 된다. 6피트를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단위인 미터로 변환해 보면 1.83미터가 조금 못 되는 깊이다.
사내가 쉬지도 않고 파내려 간 땅의 깊이는 1미터(3.5피트) 정도다. 주위가 완전히 어둑어둑해진 후에야 땅파기 작업은 종료되었다. 사내는 긴 한숨을 내쉬고 모자를 벗은 후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쳤다. 사내는 뿌드득 소리가 나게 온몸을 펴주고 가방 안에서 자그마한 플라스틱 물병을 꺼내 물 한 모금을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한숨을 돌린 사내는 누워 있는 내 쪽으로 다가와 몸 위로 덮여있던 낙엽들을 걷어내고 조심스럽게 나의 머리와 엉덩이를 받쳐서 안아 들었다. 사내의 품 안에서 내 몸은 자꾸만 아래로 축 쳐져 늘어진다. 사내는 자꾸만 늘어지는 나를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아까 파놓은 1미터의 땅 아래 조심스럽게 내 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더니 가만히 땅 속에 누운 나를 바라본다.
'미안하다'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말이 들린다. 그는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쓰고는 말없이 삽을 들어 구덩이 옆에 쌓인 흙을 내 몸 위로 조금씩 뿌리기 시작한다. 몸 위로 흙이 덮여가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차갑지 않고 따뜻하다. 내 몸은 흙으로 온통 다 덮여 땅 위에서 사라진다. 작고 봉긋한 무덤 위로 사내는 몇 번 더 흙을 두드려 이 작은 쉼터가 비와 바람에 무너지지 않도록 다듬는다.
해야 할 일을 마친 사내는 플라스틱 병에 남아있는 물을 또 한 모금 마시고는 작은 무덤 위에 몇 방울의 물을 뿌려준다. 짐을 챙기던 사내는 문득 빠뜨린 것을 발견한 듯 가방 안쪽에서 나무 팻말 하나와 망치를 꺼내더니 작은 무덤 앞에 탕탕하고 박아주었다. '또 올게'하고 멋쩍은 손인사를 한 후 사내는 아까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사내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숲 속 자그마한 무덤 앞 나무 팻말을 막 떠오른 달이 비춘다. 나무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스러운 가족 토리
오늘, 여기에 잠들다'
작가의 변:
-말도 안 되는 여러 이유로 짧디 짧은 생을 힘겹게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너야만 했던 길 위의 생명들을 생각하며, 소설 속에서나마 그 아이들을 제대로 보내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