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불러오는 괴로움

경숙 씨의 짝사랑

by Pearl K

1화


경숙 씨는 오늘도 열심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장에 정성 들여 적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단어들이 적혀있다. 계란 노른자 팩, 알로에, 목초액... 사실 경숙 씨는 지금 여기저기서 들은 아토피에 좋다는 정보들을 잊지 않도록 메모장에 꼼꼼히 적어두는 중이다.


경숙 씨가 이런 정보들을 수집하고 적어두는 이유는 하나다.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그녀의 첫 딸이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아토피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낳자마자 머리가 너무 새카매서 다 자란 아이처럼 보였다는 아이는 머릿속에 생긴 무수한 아토피와 습진으로 인해 돌이 지나기도 전에 삭발을 해야만 했었단다.


경숙 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어딜 가는지 지켜보았더니 베란다 문 앞에 놓인 커다란 알로에 화분에서 두꺼운 알로에 한쪽을 뿌리 부분부터 슥슥 칼로 잘라 주방으로 가져온다. 도대체 알로에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우리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가 칼을 들고 거침없이 알로에의 두꺼운 껍질과 속살을 분리해 낸다. 커다란 껍질은 알로에 액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놓고 알로에 속은 반듯하게 사각형으로 잘라놓는다. 잘라 둔 알로에 속은 얼핏 보면 투명한 청포묵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알로에의 용도가 궁금해졌고, 경숙 씨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알로에가 아토피에 졸다고 해서요. 껍질 수액은 몸에 직접 바르고 알로에 속은 딸한테 먹이려고요. "


잠시 후, 경숙 씨는 나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녀의 걸음이 자꾸만 빨라지더니 걸어서 10여분 거리의 다른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무언가를 들고 있다.


경숙 씨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낸 것은 아주 얇고 하얀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의아해하는 제작진에게 이것은 '훈'이라는 약재인데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면 아토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연세 드신 한의사 분께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딸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병원 진료는 물론이고 매일 보습도 꼼꼼히 해 주고, 한약도 먹여 보고, 철저한 음식관리를 비롯해 알로에, 목초액, 외국에서 개발되었다는 값비싼 신약까지 좋다는 것은 다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나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데 왜 딸의 아토피는 좋아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그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2화


몇 주 후 우리는 다시 경숙 씨를 만나러 갔다. 이번에는 중증 아토피를 앓고 있다는 그녀의 딸도 함께 만나보기로 했다. 경숙 씨를 만난 우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아토피 치료를 하다가 딸이 심한 부작용으로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약재를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얼굴과 온몸을 비롯해 손과 발이 다섯 배쯤 부풀어 올랐단다. 아이는 열을 식히기 위해서 욕조에 만들어 둔 얼음물에 5시간이 넘게 잠겨 있어야 했다.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몸이 차가워지긴 했지만 다행히 부기가 가라앉았고 너무 놀란 경숙 씨는 남은 약재를 모두 폐기했단다.


자가면역질환에 속하는 아토피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환경을 관리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먼지 진드기 예방을 위해 경숙 씨는 하루에도 세 번씩 온 집안을 쓸고 닦으며 먼지 한 톨 앉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음식도 주로 건강한 자연재료로 만든 식사를 준비하려고 노력한단다. 이렇게나 애쓰고 있는데 낫지 않는 이유를 그녀는 딸의 인내심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엄마의 수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열두 살 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너무 힘들어요. 한약을 먹으면 막 더 심해지거든요. 그걸 명현반응이라고 한대요. 엄마는 좀 참으라는데 가려워서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참아요. 엄마가 치료법이라며 해보라고 하는 건 좀 다 별로에요. 알로에는 바르면 차갑고 끈적거리는 데다가 알로에 속을 먹으면 미끌거려서 토할 것 같아요. 근데 엄마는 그걸 맨날 큰 거 하나를 다 먹으래요. 무슨 액인가는 먹물처럼 생겼고 냄새도 이상한데 마실 수 있는 거 맞아요? 음식관리 해야된다면서 치킨도 고기도 맨날 저만 빼고 제 눈 앞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어요. 그럴거면 다 같이 안 먹어야죠. 여러갸지가 너무 서러워요. 그냥 심해지면 병원 가는 게 제일 빨리 낫는 것 같아요."



딸을 위해 애쓰는 경숙 씨의 마음과는 달리 어린 딸은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아픈 것도 고생하는 것도 자기 자신인데 경숙 씨의 이런저런 시도가 딸에게는 오히려 서운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는 거다. 개리 채프먼은 사랑에는 다섯 가지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경숙 씨가 딸을 위해 열심히 애쓰고 돕는 봉사를 하고 있었지만, 딸은 오히려 반대로 자신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부모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상대가 자신에게도 그 사랑을 돌려주길 원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랑을 받고자 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때로 우리의 사랑은 상대에게 괴로움이 될 수 있음을 경숙 씨와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을 받기 원한다.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을 알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 줄 때 가장 행복한지를 물어보라. 한층 더 행복한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