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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Mar 08. 2022

쿨하지 못해 미안해

그냥 나랑 같이 있지

몇 년째 같은 집에 거주하고 있는 남의 편에게는 개인적인 시간과 노력과 금전을 들여 애지중지하는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보드게임이다. 낚시도, 카메라도, 주식도, 술도 아니고 보드게임이라니 건전하고 돈 많이 들 일도, 속 썩을 일도 없겠다는 피드백을 듣는다.


   물론 금전적으로나 다른 면에서 문제가 되진 않는데 딱 한 가지 시간이 문제다. 일반적인 보드게임이라고 하면 친한 친구들끼리 가서 1~2시간 정도 즐겁게 게임을 하고 마치는 선에서 끝나지만, 남의 편이 하는 전문가 보드게임은 한 번 가면 기본이 6~7시간이다.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보드게임 중에는 연락이 거의 안 되는 것은 기본이요,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말이 없어서 그걸로 은근히 속을 끓였더랬다.


   많이 다닐 때는 주중에 한 번, 주말에 한 번씩은 꼭 보드게임을 하러 다녔었는데 결혼을 하고 같이 보내는 시간을 종용하면서 그나마 많이 자제해서 주말에 한 번으로 타협을 보았다. 근데 가면 갈수록 이 시간이 내게 고통의 시간이 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주말에 하루를 거의 꼬박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외로웠다.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극 E 까지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바깥애 나가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활동적인 E에 속한다.


   남의 편 말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난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병원 일정 때문에 만남들이 취소되고, 또 육아하는 친구들이 늘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줄었고, 코로나 이후로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런 상황에 계속 혼자서만 있는 시간이 늘어가니 매주 조금씩 쌓여가던 서운함들이 축적되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직업도 종일 혼자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가끔 신랑은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밤샘 출근도 지방 출장도 종종 간다. 그렇게 먼 길을 하루 만에 다녀오거나 일하며 꼬박 밤을 새우거나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종일 일만 하다 오면 안쓰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나는 마음이 약해져 버린다. 나도 모르게 지키지도 못할 말을 꺼내고야 만다. 주중 공휴일에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인 취미생활을 하고 와도 좋다고 말이다.


   당장 내일도 일정을 물어보니 놀다 오고 싶다길래, 지난 주말에 일한 신랑을 생각해 그러라고 했다. 대답해 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일찍 사전투표를 했던 건, 당일에 어디라도 바람을 쐬러 가려고 했던 거였는데 갑자기 꽤 억울하고 서러워져 버렸다. 스스로 내 발등을 왜 이렇게 매번 찍는 건가 싶다.


   각자 놀고 싶은 대로 휴일을 보낼 줄 아는, 남의 편은 놀다 오라고 보내주는 그런 쿨한 와이프가 되고 싶었는데, 내 마음 오늘 참 쿨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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