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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22. 2022

거울도 안 보는 여자

거울을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바쁜 아침시간 머리를 말리고 빗는 순간 외에는 거울을 볼 일이 없다. 혹시나 해서 사무실에 놓아둔 딱 하나뿐인 거울도 캘린더와 각종 서류에 가려져 어디에 있는지도 찾기 힘들다.


   거울을 보며 찬찬히 내 모습을 바라보고 탐구했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그땐 머릿속에 온갖 엉뚱한 상상력이 가득했었다. 거울을 보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거울에 보이는 건 정말 내 모습이 맞는가, 혹시 내 시선에 비치는 건 눈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했더랬다.


   한참 외모에 예민할 사춘기가 되면서는 더더욱 거울을 멀리했다. 심한 아토피로 온통 갈랴지고 피떡이 된 피부와 빨개진 얼굴을 스스로도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거울 대신 빨강머리 앤처럼 상상력을 택했다. 현실의 나는 엉망이 된 피부에 토실토실한 몸을 가진 소녀였지만, 상상 속의 나는 쟈스민도 인어공주도 라푼젤도 벨도 될 수 있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 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지인의 소개로 3개월 정도 만난 그 샤람은 바닥까지 떨어진 내 외모에 대한 자존감을 한껏 회복시켜 주고 사라졌다. 덕분에 그 후 자신감이 생겨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한참만에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계속되는 호르몬 주사와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푸는 버릇 때문에 다시 거울을 보기 싫어졌었다. 이제부터라도 못난 내 모습이지만 제대로 마주하면서 나를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거울아 거울아 앞으로 가장 아름다워질 사람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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