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동안 틈날 때마다 남편과 둘이서 디즈니 플러스 채널의 마블 드라마들을 한 시리즈씩 천천히 관람했다.
첫 시작은 호크아이였고, 호크아이 시리즈의 모든 에피소드를 다 본 후에는 완다 비전을, 그다음에는 로키를 거쳐 얼마 전에는 개표방송 대신 왓 이프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팔콘과 윈터 솔저, 레전드와 조만간 새로 론칭된다는 문나이트 정도다.
첫 설렘을 동반한 영화 데이트가 앤트맨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된 우리 부부의 MCU와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마블 작품들의 탄생 시기와 그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마블의 새로운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가장 먼저 영화예매를 서두르고 함께 영화관으로 달려가던 우리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론칭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유년기를 보내며 자라온 나와, 부부가 함께 즐기던 마블 작품이 가득한 이 OTT 서비스는 우리가 휴일을 보내는 틈새 방법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아버렸다. 시리즈들을 쭉 보다가 마블의 작품들에 '잃어버린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드라마 호크아이에서는 우연히 한 화살 쏘는 소녀가 악명 높은 조직범죄자들의 암살자 로닌의 옷을 경매에서 발견한다. 로닌의 옷을 손에 넣게 되어 조직에게 쫓기는 소녀와 엮이게 된 호크아이의 이야기가 주요 스토리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호크아이는 블립(타노스의 핑거링으로 지구의 절반이 5년간 사라짐) 때 가족을 잃고 그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자경단이 되어 조직범죄자들을 처단하고 다닌다. 즉, 호크아이의 잃어버린 시간, 가족과 분리된 시간이 로닌이라는 자경단을 탄생시켰다. 옳은 방법이라 할 수 없지만 그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로닌을 통해 해소하려고 했던 거다.
그다음은 완다 비전이다. 처음 완다 비전을 보았을 때 비전이 죽었는데 저 60년대 미국 시트콤씩 설정은 뭘까 굉장히 궁금했었다. 알고 보니 스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완다가 직접 비전을 죽게 만들었음에도, 타노스가 닥터 스트레인지의 타임 스톤을 이용해 비전을 되살렸고 결국 비전은 타노스에 의해 마인드 스톤을 빼앗기며 죽게 된다.
그 직후 완다는 블립이 되었고 돌아온 직후 그녀의 평생의 사랑인 비전을 찾으러 어벤저스 본부를 찾아갔으나 블립으로 인해 바뀌어 버린 쉴드 국장이 비전의 시신을 국가재산이라며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완다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인질로 삼아 어릴 때 보았던 자기만의 시트콤 세상을 만들어 조종하게 된다. 비전을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도 잃어버린 완다를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던 스토리였다.
세 번째로 봤던 작품은 로키다. 토르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던 도중 시간선을 임의로 변경한 죄목으로 로키는 시간의 파수꾼들에게 끌려간다. 그곳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멀티버스의 수천수백의 서로 다른 로키들을 만나면서 로키는 자신의 진정한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찾으려고 한다.
시간 파수꾼의 도움으로 해당 단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목적을 찾으면서 로키는 드디어 잃어버린 왕위가 아닌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으려 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누군가의 동생이나 오딘의 아둘이 아니라 로키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가게 된다.
네 번째로 본 것은 What if인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있고 왓쳐의 입장에서 멀티버스로 다양한 상상들이 이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실험에 참여한 것이 캠틴 카터였다면, 혹은 토르가 형제가 없는 외동이었다면, 울트론이 이겼다면, 킬몽거가 배신했다면 등등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이 신기했다.
새로운 마블 유니버스에 대한 비틀린 상상과 호기심 그리고 막연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What if라는 단서를 달아 지난 시간들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는 가능성에 대해 말하면서도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고, What if의 마지막 편은 블랙위도우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를 심어주기도 했다.
우리의 지난 2년을 생각해 본다. 코로나 동안 지구 위의 모두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이 생겼다. 이제 엔데믹이 코앞이라고 한다. 확진자수는 나날이 치솟고 델타와 오미크론의 변종인 델타크론이 나왔다는 얘기도 있지만, 많은 예측에서 지금이 코로나의 마지막 남은 분기점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앞으로 약 2개월을 기점으로 확진자 수는 줄고 코로나는 이미 다 한 번씩 걸려서 더 걸릴 사람이 없어 바이러스가 사그라드는 형태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난 2년간 코로나의 창궐기 동안 보이지 않던 수많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안전망 없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 빈부격차, 비정규직, 성별 간 임금격차, 돌봄노동의 쏠림현상, 법의 무수한 사각지대, 차별과 여성 혐오, 난민, 다문화, 장애인들의 정보 소외, 기후위기, 환경파괴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사회적 논의와 더불어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들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또 잃어버렸던 시간들을 되돌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진지하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코로나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볼 때다.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렸던 지난 시간들을 견디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