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고 배가 부르면 잠을 자고, 잠이 깨면 울음을 터트릴 줄만 아는 갓난아이였다. 같은 해의 오월, 멀지 않은 도시 광주에서는 청춘들의 꿈이 권력에 대한 한 사람의 욕심으로 속절없이 스러져 갔었다.
내가 처음 광주의 오월을 알게 된 것은 학교 대표로 나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 글짓기 대회에서였다. 망월동 묘역에서 각지의 고등학생들을 모아 진행되었던 행사였다. 이미 수업시간에 5.18에 대해 들었지만 선생님께 듣는 것과 직접 망월동 모역에 가서 사람들의 사진과 무덤을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창가에 서 있다가 총을 맞은 열네 살의 중학생, 배에 대검이 꽂혀 죽은 임산부, 동생을 구하러 갔다가 같이 총을 맞아 쓰러진 형제 등등 하나하나 기막히지 않고 절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도대체 신군부는 왜 평범한 시민들에게 이런 학살을 자행했던 것일까. 뉴스에 나오는 대학생들의 데모에 혀를 끌끌 차던 부모님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오월의 청춘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이제껏 5.18을 다루었던 여타 작품들에 비해 사건의 핵심에서는 많이 빗겨 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기에 오히려 그때의 정권이 흘렸던 선동 운운하는 거짓말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월의 청춘 대본집을 읽으며 오월의 청춘 그들을 통해 아무런 관계없이 자신의 일상을 살던 평범한 사람들까지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5.18이었음을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희태와 명희 그리고 수련과 수찬. 각각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의 현재가 그들의 오월에 상당 부분을 빚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부당하게 생명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일 한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벌 수 있도록, 지위고하의 차이 때문에 인간의 존엄을 훼손당하는 일이 없도록 먼저 자신들의 청춘을 내주었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 해야겠다. 수많은 희태와 명희와 수련과 수찬이의 오월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