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어져 가는 결혼을 배우고 말하다

나의 베우자 기도

by Pearl K

모태신앙은 아니었다. 결혼 전 1년에 딱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에 선물을 받으러 동네 교회에만 갔던 나의 어머니는 결혼 후, 첫째 아이 임신기간에 잠시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출산하고 두 달도 안 되어 둘째가 들어섰고, 둘째를 낳은 해에 몇 달도 안 되어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연년생 남매를 키우며 채 3년이 되지 않아 셋째를 낳게 된 엄마는 올망졸망한 아이들만 돌보기에도 삶이 버거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교회와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내가 일곱 살이 될 무렵, 옆집 아줌마의 권유로 엄마는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엄마는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중에 너희가 커서 결혼을 하게 되면 당연히 믿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반복 학습도 잊지 않았다. 아직 꼬꼬마였던 중학생 시절, 중등부 수련회에서 처음으로 배우자 기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배우자 기도의 제목을 구체적으로 적고 기도했더니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났다는 거였다.


아직 어렸던 나는 그 이야기에 크게 감화되었고 매우 구체적인 배우자 기도 제목을 적으려고 애를 썼다. 먼저, 2대 이상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사람, 쌍꺼풀이 있고 눈이 큰 사람, 적당히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람, 키는 나보다 크면 되고, 나만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시부모님이 진심으로 아껴주는 분들, 같이 책을 읽고 나눌 수 있는 사람 등등. 또 중학생 때는 남자는 왠지 싫은데 아기는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던 지라, 자녀 입양에 대한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기도 제목을 적기도 했었다.


시간은 흘러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여전히 홀로 남겨져 있었다. 길고 긴 기다림과 베개를 적시는 눈물의 기도가 이어졌다.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이 소개해 준 데이트 어플을 통해 여행이 끝난 후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 남자와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지난 5년간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게 나의 배우자 기도에 응답해 오셨는지를 볼 수 있었다. 내면에 남은 상처와 응어리를 해소할 기회를 주셨던 게 큰 그림의 시작이었다. 피폐해진 정서와 감정을 회복하고 나니 놀랍게도 외모까지 다듬을 기회를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의 자존감을 끌어올려준 만남도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결혼 혹은 가정을 만드는 것을 망설이는 나의 걱정과 염려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해소해 주셨던 시간들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징징거리고 불평하던 시간 동안 세세하게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얼마나 성실하게 준비하고 일해오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다 계획이 있으셨다. 배우자 기도에 적었던, 내가 구체적으로 소망한 기도 제목과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다.

처음에는 나의 욕심이 들어간 제목이 배우자 기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계속 기도를 할수록 나의 욕심은 내려놓고, 버릴 것은 버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주님,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실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요셉 작가님의 ‘결혼을 배우다’ 책 속의 문장이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할수록 결국 내가 먼저 좋은 배우자로 준비될 수 있길 소망하는 기도로 변해가는 것을 경험했다.


배우자 기도에 적합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결혼생활에 날마다 꽃과 케이크가 넘치는 건 아니다, 30년 이상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 온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고 심하게 부딪치기도 한다. 결혼생활은 기쁨과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훈련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배우자 기도도 결혼생활도 모두 내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때 당장의 삶의 문제들은 여전한 것처럼 보여도, 내가 원하는 것이 원하는 때에 잘 이루어지지 않아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고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가정을 통해 그분의 아름다운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 이요셉 작, ‘결혼을 배우다’에서 꼭 기억하면 좋을 두 문단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내가 이만큼 바뀌기까지 주님이 나를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도 필요한 오랜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기도해야 한다. 사랑하는 만큼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기다리거나 기도하는 것보다 쉬운 행동이다.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기다리며 기도해야 한다.


”먼 미래에 있을 두려움과 근심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인생을 계획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막연한 근심과 두려움 대신 오늘의 주님을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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