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특별했던 특별 공연

무대를 사랑하는 이유

by Pearl K

모두가 커튼콜을 위해 무대 앞에 섰다. 막이 열리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는 시원한 폭포수를 온몸으로 흠뻑 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떨떨했지만 아주 행복했다.


처음 공연 준비가 시작된 건 여름방학 전부터였다. 연극부 담당 선생님은 대학교 때 전통 있는 연극동아리에 계셨다고 했다. 선생님이 가져다주신 대본은 ‘방황하는 별들’이라는 연극 대본을 각색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연습했고, 드디어 학교 축제 전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리허설에는 전체 축제를 총괄하는 선생님도 오셔서 리허설 런쓰루(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것)를 관람하셨다. 런쓰루가 끝나고 마지막 커튼콜 위치까지 연습하는데 무대 앞쪽으로 다가온 축제 총괄 선생님이 마구 화를 내셨다. 이유는 우리가 준비한 연극에 나오는 이상한 교사 캐릭터의 별명 ‘미친개’가 당신을 연상시킨다는 거였다. 결국 공연 하루 전날 대본의 욕설과 교사 캐릭터의 별명을 모두 순화된 언어로 수정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무대 뒤편에 모여 분장을 받기 시작했다. 분장 후에는 보안을 위해 돌아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종일 극장 뒤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나는 눈치 없는 반장과 친구 5라는 두 가지 배역을 맡고 있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고 1학년과 2학년을 대상으로 정해진 시간에 공연이 진행되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뒷정리를 시작하려는데 무언가 개운치 않았다. 공연을 분명히 무대 위에 올렸고 나름대로 반응도 괜찮았는데 이대로 끝내기엔 지난여름 동안 땀 흘리며 연습한 시간이 아까웠다. 그때 3학년 학생회장이 연극부 선생님께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고3들을 위해 저녁식사 시간에 공연을 해 줄 수 없냐고.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무조건 한다고 한 마음으로 외쳤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사실은 아쉬웠던 거다.


모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축제 다음 순서 때문에 빌린 옆 초등학교 강당으로 이동하고 극장에는 연극부와 고 3만 남았다. 우리는 원래의 대본대로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욕설도 넣고 별명도 원래대로 미친개로 부르는 거다.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고, 고3만을 위한 특별한 저녁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채 9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낮에는 잘하고 나서도 그렇게 찝찝했었는데, 고3이 관객으로 온 이번 3회 차 공연은 정말 달랐다. 그동안 입시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던 3학년 선배들은, 우리가 하는 공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은 격한 리액션으로 반응해 주었다. 무대와 연극과 배우와 관객이 모두 하나가 되어 함께 커다란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공연 내내 엄청난 리액션을 보여준 3학년 선배들은 마지막 커튼콜 후에도 무려 전체 기립박수와 환호로 잊히지 않는 어마어마한 각인을 내 삶에 새겨주었다. 그렇게 고3들만을 위한 공연이 끝났고, 너무 흥분해서 잘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부여잡고 뒷정리까지 무사히 끝냈다.


뒤늦게 초등학교 강당으로 가는데 하늘을 수놓은 별들은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사실 온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었다. 그때의 신나고 흥분되고 즐거웠던 기억은 내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선명히 깨닫게 만들었다. 물론 연극부 담당 선생님이 그 꿈을 고스란히 짓밟으셔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가장 기분 좋았던 무대는 그날의 특별공연 무대였다.


며칠 전 2521 드라마 속의 축제 장면을 보았다. 덕분에 그날의 특별 공연과 강당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반짝이는 별빛으로 가득하던 밤하늘이 떠올랐다. 그때 꿈꾸었던 대로 살고 있진 않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교 때도 연극동아리와 선교단체, 교회에서까지 무대 위에 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는 배우로 때로는 조연출이나 음향 오퍼로, 때로는 소품 담당, 스폰 담당으로 공연을 준비했다. 덕분에 내가 직접 기록해 둔 나의 필모그래피에는 32편의 연극과 뮤지컬 작품이 적혀 있다. 무대 위에서의 더 많은 추억을 놓치지 않고 남길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다.


요즘 다시 무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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