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자리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

오늘도 자리를 찾는 청춘에게

by Pearl K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밤새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원서를 제출하러 갔더니 원서접수가 마감되었다고 했다. 아직 공지한 접수 기간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사실은 내정자가 있었던 거다.


그날은 지방에서 서울로 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새벽 5시도 안 되어 올라와서, 해당 기관이 문을 여는 10시까지 갈 곳이 없었다. 처음 가는 동네의 목욕탕에서 때 빼고 광내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원서를 제출하러 갔는데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였다.


그냥 내려갈 수가 없어서 서울에 자리를 잡고 다른 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조그마한 고시원 방을 하나 구했다. 1.2평 남짓한 고시원의 월세는 23만 원이었다. 그 시절의 사글세가 보통 연 150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친척도 친구도 없고, 이유 없이 장기간 나를 재워줄 곳은 더더욱 없었다.


장장 3개월이 넘게 직장을 구하러 수많은 노력을 했다. 한참 유행했던 그래픽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해당 디자인 학원과 연결된 헤드헌팅 회사에서 소개해 주는 회사에 이력서만 100번을 넣었다. 그러나 면접에 오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사실 이건 취업을 빙자한 학원 수강생 모집 사기였다. 중간에 그 사실을 깨닫고 학원비 환불을 요구했지만 한 달이 넘어 2달 치 학원비를 제하고 환불해 준다고 했다.


취직은 안 되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니 교통비가 나가고, 먹고 살려니 밥값이 들었다. 먹는 거라도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 상비된 맨밥과 컵라면으로 몇 달을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고시원 방세는 칼 같이 나가야 했다. 결국 늘어나는 건 빚뿐이었다.


학원에서 취업 빙자 사기를 당했다는 걸 깨닫고,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난 카드 청구서를 보니 숨이 탁 막혔다. 아무것도 입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취업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다녔다. 취업 지원센터, 고용센터, 노동부...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실업급여 지원 같은 건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한 경력이 필요한데, 그 일한 경력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구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일주일이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부유령처럼 여기저기를 다녔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고, 나는 반쯤 미쳐있었다. 그나마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의 작은 방뿐이었다.


선릉역 3번 출구 계단을 터덜터덜 힘겹게 오르던 그때, 어디선가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를 따라가 보니 출구 바로 바깥에 파는 호두과자 냄새였다. 나는 남은 2천 원으로 호두과자를 한 봉지 사고, 아직 뜨끈뜨끈한 호두과자 한 개를 조심스레 베어 물었다. 열흘 만의 첫 끼니였다.


호두과자가 목으로 넘어가는 그 따뜻한 온기에 그동안의 설움이 밀려와 엉엉 울었다. 역에서 고시원까지 15분을 엉엉 울면서 눈물범벅이 되어 걸어갔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친구들 그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던 아픈 마음에 그 호두과자 하나가 자그마한 위로를 건네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또 일주일 후, 임시직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얻게 되었다.


그때 호두과자를 베어 물고 엉엉 울며 고시원으로 올라가던 그때의 나를 먼저 꼭 안아주고 싶다. 그 눈물을 닦아주면서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일할 수 있는 곳,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은 꼭 있어. 너의 자리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취업이 안 되어 가장 고민하는 건 걱정하는 어른들이 아니라 그 일을 겪는 본인이다. 요즘도 젊은 청년들이 일할 곳을 찾기가 정말 너무 힘든 시기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푸르른 청춘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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