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작별인사

내가 자란 집

by Pearl K

1987년 5월 1일. 아빠의 전근을 따라 우리 가족 모두 새로운 동네의 새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다섯 가족이 살던 열다섯 평 집이 갑작스레 넓어지면서, 오빠에겐 오빠만의 방이 생겼고 나와 동생에게도 자매를 위한 방이 생겼다. 게다가 엄마가 간절히 기도하며 원했던 동호수가 딱 당첨되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연립빌라가 모여있는 곳에서 첫 번째 동인 1동이어서 뒷 베란다에서 동네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쇼핑센터가 바로 보였고, 아담한 3층 빌라에서 딱 중간층인 2층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 집에서 나는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고 짧은 다리로 롱다리 오빠와 여동생을 쫓아가느라 늘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난 우리 집을 참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공간은 책으로 가득 찬 거실이었다. 한동안 엄마가 출판사에서 전집류를 떼어다가 판매하는 부업을 했는데, 덕분에 거실 양쪽이 모두 책을 잔뜩 꽂아놓은 책장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오빠의 방 안에도 책장을 가득 두고 그곳을 전집류로 가득 채웠다.

엄마가 팔던 전집류는 프뢰벨, 몬테소리 같은 유아용 교구 전집부터 0~6세까지 연령별로 보는 전집류, 소년소녀 세계명작 전집, 디즈니 동화전집, 과학 대백과사전,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대와 주제를 커버하는 책들이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지만 팔리기 전까지 우리는 그 전집들을 참 많이도 반복해서 읽었다. 특별히 놀거리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나는 언제나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바르게 앉아 읽으라고 눈 나빠진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홍수처럼 듣긴 했지만, 그렇게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찬 공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반대로 집 바깥은 안 좋은 기억들로 가득한 곳이어서 내게 너무 힘든 공간이었다. 정말로 그 동네 자체를 좋아하진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자라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였다. 동네에만 가면 압축기로 눌리는 느낌이 들어, 대학교 1학년 때 여름방학 이후로는 몇 년간 거의 집에 내려가질 않았다. 명절에 겨우 이틀씩 그렇게 1년에 4일. 그마저도 떼어먹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가 모두 서울에서 살게 된 후, 다시 가보기도 전에 그 집을 팔게 되었다.


그 집은 아빠의 회식 자리에서 노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처음으로 보랏빛 향기를 불렀던 나의 데뷔 무대였으며, 책을 놀이로 삼고 놀 수 있었던 나의 놀이터였다. 남몰래 흘려야만 했던 내 눈물을 닦아주던 샤워기가 있었고, 유리 가면 만화책의 주인공인 마야 같은 배우를 꿈꾸며 연기 연습을 하던 세면대 앞 거울이 있었다. 돌아보니 제대로 이별도 못 한 채 추억 속 집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 슬퍼진다.


그 후로 부모님은 몇 번 더 같은 동네에서 집을 옮기셨고, 여전히 그 동네에 살고 계시지만 그 집들은 모두 내가 아는 우리 집 같지 않고 낯설 뿐이다.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살던 시절의 내 추억 속의 우리 집. 10년쯤 전의 어느 날인가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혼자 예전 집 앞으로 가서 작별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듣지 못했을 지라도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제대로 인사하고 나서야 우리 집을 진짜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고마웠어 나의 10대를 모두 함께한 우리 집. 이제 진짜 안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