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함께 혹은 교회에서 계곡을 자주 찾아다녔다. 어른들은 풍경을 보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하니 더위를 식히는 데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계곡도 종종 갔었지만, 역시나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은 한 장소의 기억이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중심부인 꼬불꼬불한 산길이 9,000 굽이를 헤아린다는 무주 구천동이 그곳이다. 무주 구천동 계곡의 길이는 그 초입부터 마지막까지 무려 25km에 달한다고 한다.
그중 33경으로 꼽히는 계곡의 아름다움이 뛰어나고 주변 경치도 매우 수려하여 그야말로 절경이다. 우리 가족과 부모님과 친한 몇몇 집이 모여 무주 구천동에 놀러 간 때는 화창한 햇살과 자연풍경이 너무도 잘 어우러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가장 넓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계곡 물아래에 붙어 있는 이끼 덕분에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계곡물에서 온몸을 담그고 놀았다. 사실은 인어 출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만큼 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보니, 부모님들이 텐트를 치고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계속 물에서 놀았다.
아주 깊지 않고 초등학생 아이들이 놀만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터라 사실 본격적인 수영을 하기에는 살짝 얕은 감이 있었다. 깊은 곳이 없는지 확인한 후, 수영을 했다가 잠수도 했다가 자맥질도 했다가 하며 신나게 놀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었다.
일명 시체 놀이라고 해서 숨을 참고 물 위에 엎드린 채로 살랑살랑 계곡물에 몸이 떠 가도록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아니면 반대로 계곡물을 물침대 삼아 물 위에 누워 유유자적하게 파란 하늘과, 나무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며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주변의 푸르른 풍경들을 몇 번이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물 위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한 번은 계곡에 놀러 가서 신나게 놀다가 센 물살에 아래쪽 계곡으로 떠내려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해서 살려달라고 반복해서 소리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친오빠가 오더니 “일어서 바보야!” 하는 거다. 화가 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선 나는 허탈함과 민망함에 멋쩍게 웃었다. 물 높이가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내 무릎까지도 오지 않았다. 계곡 위에서부터 물살에 밀려 내려오느라 당황했던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계곡보다는 수영장을 혹은 바다를 더 갔던 것 같다. 지금은 계곡에 가도 그때처럼 물에 들어가 놀기에는 너무 어른이 되어버려서 아쉽다. 점점 습하고 더워지는 날씨에 차가운 계곡물의 시원함이 간절히 그리운 요즘이다. 언젠가 가족끼리 함께 또 계곡에 가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날을 애타게 기다려 본다.